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우리 민족의 중심종족은 부여이다

<우리 민족의 중심종족은 부여이다>
:서강대 임지현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적 헛소리를 비판한다.
임지현 교수는 횡설수설한다.
"사실 고구려사를 놓고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건 2천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있었던 것은 그저 고구려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2천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근대 동아시아의 경우)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켜 버리는 것이 지금의 논쟁구도인데, 이건 시대착오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얘기이지요. 가장 비역사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논리를 역사학자들이 전개하고 있다는 코믹한 상황이랄까요."
이 말은 맞지만 동시에 근대국민국가의 날조된 민족개념을 그대로 또한 사용한다.
"고구려사가 한국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게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겁니다. 한반도의 경우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건 20세기 초였거든요. 북한의 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마음대로 의역을 해서 '민족'이라는 말을 뽑아내곤 하지만(웃음),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어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근대에야 생긴 개념을 고대사에 대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즉 서구 근대국민국가의 날조된 민족개념을 기준으로 다시 고구려사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착종된 논리를 버젓이 학자가 자기 자신이 비판한 그 개념으로 민족개념을 다시 찾아와서는 고구려사를 한민족의 역사에서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학자가 아니라 거의 정신병자다. 근대민족 개념으로 고구려사를 보지 말자면서 근대 민족 개념으로 다시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아닌 것이다. 말이 되는가?
민족은 서구 근대인의 자 민족 국가의 필연성에 대한 논증일 때에는 일종의 날조된 사기이지만, 특정한 혈연적 문화적 전통을 지닌종족이 타종족과의 경쟁 갈등 전쟁 속에서는 실체적인 개념이다.서구 근대가 유로-기독교 제국 체제하에서 그리스-유대적 문화 속에 통합되었다가 허구적 민족 개념으로 근대국민국가를 만들었던 경험을 기준으로 민족을 바라보가 때문에 임지현 교수와 같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를 중심으로 5국분립시대, 그리고 삼국 분립, 그리고 "삼한 일통"의 이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었던 탓에 서구 근대의 민족개념을 기준으로 우리 역사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임지현 교수의 횡설수설은 한마디로 오리엔탈리즘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근대민족개념을 비판하면서 서구 근대 민족개념을 그대로 차용하였기에 나온 사고방식인 것이다.
일전에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연재글에서 민족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민족은 없다는 결로은 핵심적으로 혈연적으로 유전적으로 계통화된 종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타 민족에 대립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민족이란 없다는 뜻이었지 민족 자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 대립이 생길 때 특정한 문화적 종족적 일체성을 지닌 민족의 공동체가 타 민족의 침략과 적대에 대해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 근대의 민족은 민족주의적인 것이다. 하지만 서구 근대의 민족은 날조된 신화다. 유로-기독교 제국의 봉건체제가 정신적으로 기독교주의, 정치적으로는 봉건체제제적 분립 상태였다. 그러나 일정한 시장과 세금의 관할권을 요구하는 절대왕조가 유로-기독교 체제를 붕괴시키면서 옛 이야기를 기반으로 민족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봉건영주체제를 붕괴시키고 국민국가를 만들면서 민족을 가공적으로 창안해냈다. 그들이 혈연적 문화적 종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종족적 혈연적 문화적 독자성보다는 유로-기독교 제국체제의 문화적 통일성 속에 함몰되어 있었던 탓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만족들이었던 탓에 자기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화고 그리스-유대적 문화에 그 정신적 문화적 밑바탕까지 흡수당한 상태였기에 옛 이야기들조차 기독교적으로 윤색되어 있었다.
따라서 국민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특히 근대적 자본주의의 발흥기에 형성된 상호 이해관계의 갈들이 그들로 하여금 국민국가로 통합할 이유가 생겼다. 이것을 수행한 것이 왕조에 의한 국민국가적 통합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서구의 민족은 날조된 인공의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종족 내부에서조차 수개의 국가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대역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고대 조선과 더 너머 고대 환국=밝달=배달국은 처음부터 민족걔념이 없는 세계제국으로서 탄생하고 더군다나 적대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종족적문화적 통일성을 형성하고 있었다.하지만 고대 환국에서 은나라가 분기되어 나가고 은나라가 자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적대하는 그 과정에서 조선은 세계제국의 일부가 아닌 국가가 된다. 처음으로 다른 국가를 대면한 것이다.그리고 은과의 갈등과 협력이 반복되다가 주나라가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제국와 제국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조선의 가장 강대한 부여(불한 조선-그 뿌리는 기본적으로 유목적 수렵적 전통을 가진 고대 한민족이다)를 중심으로 BC700년 경에 조선은 새로 통합된다. 하지만 곧이어 춘추전국 시대의 말기에 한의 형성과정에서 점차 고조선은 삼한관경체제가 붕괴되고 대 열국 시대가 일어난다. 약 150여개 국가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부여를 중심으로 대통합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한나라의 영토를 북경 이서로 밀어붙이는 과정이었다. 고주몽의 당호 "다물"이라는 것은 고조선의 옛 영토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니 당연히 이때부터 민족 개념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서 대열국시대가 5국(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백제)시대로 통합되고 다시 삼국으로 정립되면서 고구려에 의한 천하가 AD5세기까지 진행되었으나 백제가 워낙에 강국이라서 삼한 통일은 하지 못하고 수당전쟁의 와중에 가장 곤혹스러웠던 백제, 고구려가 먼저 망했지만 결국은 발해-신라 남북국 시대로 넘어가고,잔존 백제와 가야세력이 일본으로 독립하여 간다. 백두산 대폭팔로 발해가 멸망하면서 거란- 고려의 남북국으로 다시 전환되고, 문화적 전통은 고려로 일통이 일어난 것이다. 거란의 멸망과 발해의 잔존 부족인 여진의 부흥으로 다시 여진- 고려 2국체제로 갔다가 원제국에 의해 동아시아 전체가 통일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결국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역사는 형성된 것이니 중국의 문화에 통합된 선비-거란-여진과 같은 우리 민족의 일파는 중국 민족의 일부가 되고, 우리는 지난 5천년의 역사문화를 통합하고 이어온 민족이니 그 민족이 민족의 전통이 된 것은 단군조선의 문화요, 배달환국의 홍익인간의 정신이며, 부여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핵심 전통이고, 진한조선의 일파인 신라가 그 핵심전통을 또한 형성하였으니 불한 조선의 부여종족이 우리 민족의 중심이고, 진한 조선이 그 다음이다. 그러나 대개가 다 환웅단군을 섬기는 조선의 유민들의 역사다.
이런 측면에서 민족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논리가 근대민족의 날조 개념을 그대로 가져온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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