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5일 월요일

'경제적 세계화'와 '정치적 세계화'의 차이 -탈(脫)근대'보다 '본(本)근대'

'경제적 세계화'와 '정치적 세계화'의 차이

[김기협의 자본주의 이후]<6> '탈(脫)근대'보다 '본(本)근대'를 생각할 때

김기협 역사학자 2014.12.15 15:28:05
  
산업혁명은 농업혁명에 이어 인류 역사상 두 번째 맞는 존재양식의 큰 변화였다.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먹을 것을 자연에게서 '얻어먹는' 단계에 있었다. 주면 먹고, 안 주면 굶고. 농업혁명으로 '찾아먹는' 단계에 들어섰다. 자연이 던져주지 않아도 재주껏 먹이를 찾아 허기를 달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산업혁명은 '뺏어먹는' 단계를 열어주었다. 자연을 변형-훼손시키면서 식량과 에너지를 뽑아내 욕심을 채우게 된 것이다.

존재 양식의 변화에 따라 사회의 조직 원리에도 변화의 필요가 일어났다. 농업혁명 이전 인류의 개체수는 지구상에 1000만 이하로 추정된다. 몇 억이 되었을 때 산업혁명이 시작되어 지금은 70억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세계가 '좁아지는' 변화다. 좁아진 공간 안에서 어울려 살려면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근대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유동성 증가가 필요하게 된 것은 이 까닭이다. 농업혁명으로 채집-수렵사회에서 농업사회로 넘어올 때도 체제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농업사회에 적합한 체제가 안정되는 데는 무척 긴 시간이 걸렸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안정된 체제가 자리 잡은 것으로 이해된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에 따른 체제 변화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근대체제'로 이해해 온 자본주의-민주주의체제가 사실은 산업사회에 가장 적합한 체제가 아니라 더 안정성 있는 체제를 모색하는 과정의 하나의 시행착오나 과도적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72년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로 환경과 자원의 한계 문제가 부각된 이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에 관심이 일어났다. 그 후 40년 동안 파국을 늦추기 위한 노력은 늘어나 왔지만, 확실한 해결책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존의 근대체제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탈(脫)근대'(postmodern)란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본(本)근대'를 생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근대'가 '중세'처럼 상당기간 인류사회의 안정된 상태를 이루려면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 온 근대보다 훨씬 지속성 있는 체제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근대를 '가(假)근대'(pseudomodern)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꼭 이런 말을 쓴 논설을 아직까지 본 일이 없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근대'의 개념을 재고하려는 시도는 꽤 보인다. '가근대-본근대'를 하나의 가설로 내놓는 데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 

20세기 후반에 '탈근대'란 이름으로 시작된 변화를 '근대화'의 본 단계에 들어서는 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펼쳐진 근대를 완성된 근대로 보기 때문에 '탈근대'란 이름을 붙인 것인데, 돌이켜 생각하면 이 300년의 시기에는 인류사회가 안정된 체제를 구축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농업문명 시작 때도 오랜 시간에 걸쳐 대형화된 전쟁이 세상을 휩쓸던 상황을 여러 문명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농업사회 체제 정착에 그런 과도기가 필요했던 것처럼 산업사회 체제 정착에도 수백 년의 과도기가 필요했던 것 아닐까?

'탈(脫)근대'보다 '본(本)근대'를 생각할 때 

과연 지금의 변화가 '탈근대'란 이름대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가 또 한 차례 격변의 시대를 인류가 겪게 될지, 아니면 지금까지의 시행착오를 넘어선 진정한 '근대화'로 안정된 세계체제를 이룩하게 될지, 지금 바로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생각을 '본근대' 쪽으로 한 차례 모아볼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탈근대라면 '근대 이후'가 어떤 것이 될지 판단할 근거가 별로 없는 반면, '본근대'의 방향은 지금까지의 궤적에서 이어나가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으니까. 

근대화의 본질은 사회유동성의 증가에 있다. 중세체제가 한계에 접근하며 유동성 대폭 증가의 필요가 느껴질 때 그 대책이 여러 방향으로 강구되었다. 그중 유력한 대책으로 떠오른 것이 산업혁명을 앞세운 유럽식 근대화였다. 유동성을 일거에 급증시키는 극단적 대책인데, 어떤 변화든 변화 초기에는 극단적 대책이 흔히 통용되는 것이다. 기존 체제 파괴라는 단기적 과제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시계추가 중간에 머물지 않고 반대편 끝까지 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다. 

유동성의 급격한 증대는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유럽식 근대화가 궤도에 오르자마자 문제들이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사회주의, 제도주의 등 대응책이 나왔다. 그러나 시계추가 관성을 가진 것처럼 기존 '근대화세력'이 반동력을 발휘했고, 그 결과 20세기 전반기 동안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공산주의 확장은 유동성 억제 필요에 따른 현상이었는데, 이 역시 시계추가 지나치게 반대쪽으로 간 결과였다. 유동성을 너무 줄였던 것이다. 그에 비해 일부 유럽국에서 자본주의체제에 사회주의 원리를 가미하는 중도적 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환경 보호와 자원 절약을 지표로 하는 중도적 정책이 유동성을 적정선에 조정함으로써 산업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효과적인 방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이 기본 방향에 거스르는 반동 노선이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유동성의 극단적 증대를 제창한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파편화하는 데서 출발, 모든 인간적 가치를 자본의 가치에 종속시킴으로써 자본의 지배에 대한 일체의 저항을 없애는 데 목적을 둔 노선이다. 세계가 움직여가는 자연스러운 방향의 반대쪽으로 소수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위해 매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반동 노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 '뉴라이트'의 이름으로 발표되어 온 신자유주의 논설을 보면 해외의 신자유주의자들에 비해서도 표현이 무척 노골적이다. 식민지시대를 겪은 사회에서 식민지 경험을 미화하는 주장이 이렇게 당당하게 횡행하는 것은 별난 일이다. 신자유주의 반동 노선에 대한 한국사회의 저항력이 매우 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보여준다.

저항력이 약한 문제는 문명 전통의 단절이 심한 데서 오는 것이다. 단적인 문제가 엘리트계층의 부재 현상이다. 재산과 고등교육을 비교적 많이 누리는 계층이 한국사회처럼 바깥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정상적 현상이 아니다. 이 사회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너무 적다. 

자연과의 평화없이 세계평화 없다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온 '근대화'가 산업사회 초입에서의 한 차례 방황이라고 본다면, 본 단계의 근대화는 어떤 방향의 변화일지 무엇을 보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나는 두 가지 지표를 생각한다. 하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이고 하나는 인간사회의 조직방법이다. 물론 두 지표는 서로 얽힌 것이다.

종래의 근대화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아무런 절제나 균형을 생각지 않았다. 인간의 일방적 지배만 생각했다. 그래서 근대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의 책임보다 권리만 생각하게 되었고, 이에 입각한 근대사회 조직방법에서는 조화와 균형을 확보하는 메커니즘이 취약하게 된 것이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라는 관념 자체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지배 때문에 성립되는 것"이라는 환경론자 머레이 북친의 말에 나는 공감하는데, 이 말을 뒤집어서 하면 더 중요한 뜻이 담길 수 있다고 본다. 자연과의 관계에서 균형감각을 잃은 것이 인간사회의 가치관 획일화와 극단적 분화현상을 불러온 것이라는 생각이다.

1945년 원폭 투하에 충격을 느낀 아인슈타인은 "인류와 문명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계정부 창설에 달려 있다"고 했다. 현실성 없는 발언이란 비판에 이렇게 대꾸했다고 한다. "세계정부라는 생각이 현실적이지 않다면 우리 미래에는 단 하나의 현실적 전망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전면적 파괴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세계정부'란 국가정부가 국가 내의 질서에 책임을 가지는 것처럼 세계적 질서에 책임을 가지는 주체가 나타나는 '정치적 세계화'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20여 년간 이야기해 온 '세계화'는 따져보면 '경제적 세계화'만을 뜻한 것이다. 진정한 '세계주의(globalism)'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국가의 파괴를 통해 '개인주의'를 확장하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와 책임을 규정하고 보장하는 것처럼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을 관리하는 세계정부의 존재가 인류문명의 지속을 위해 필요하다고 하는 아인슈타인의 주장은 지당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근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정부상태가 계속되어 온 가장 중요한 이유가 그 동안 초강대국의 위치를 누려온 미국의 역할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정부상태 지속이 자국에 유리하다고 미국은 판단했고, 그러한 미국의 정책을 견제할 만한 힘이 지구상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보여주는 두드러진 특징 두 가지만 지적한다. 하나는 미국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11.2kw)이 세계 평균(2.1kw)의 다섯 배가 넘는다는 사실이고(2011년 기준), 또 하나는 개인의 총기 보유가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세계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턱없이 높은 자원소비 수준을 계속해 온 나라고, 문명국답지 않게 힘의 원리에 거의 아무런 절제를 가하지 않는 나라다.

2008년의 금융공황은 미국 패권주의 중심의 세계적 무정부상태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신호였다. 중국의 정책 선택이 미국의 정책 선택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 그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그 압박의 수준은 냉전시대의 소련보다 훨씬 더 심대한 것이고, 지금도 계속 커지고 있다. 변화의 추세를 외면하는 미국의 정치적 관성 때문에 대안으로 떠오르는 중국의 입장이 반사적으로 강화되는 형국이다. 

아인슈타인의 꿈이 이뤄지려는가? 

중국 역시 힘을 키우면 패권주의 성향을 나타낼 걱정이 있다고도 한다. 이미 패권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주의와 비슷한 것이 될 염려는 없다고 본다. 미국이 전 세계를 상대로 '갑을관계'를 맺은 것 같은 압도적인 힘을 중국이 가지게 될 것 같지도 않고, 중국이 미국과 달리 문명의 전통을 가진 나라라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유럽식 근대화의 출발에 맞춰 만들어진 미국이라는 나라는 유동성 과잉 시대의 산물로서 절제의 메커니즘이 원래 취약한 사회다. 중국이 설령 큰 힘을 갖게 되더라도 홉스봄이 말한 '극단의 시대'를 답습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정부'는 이미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근대국가처럼 꼭 확고한 체제를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조약과 협약의 집합체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자원과 환경에 관한 협약의 확대와 강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지금까지 미국의 저항이 뚜렷했다. 미국의 저항력은 그 동안 약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약해질 것이다.

70년 전 아인슈타인이 말한 '당위'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얼마나 뚜렷한 현실이 언제까지 이뤄질지 지금 장담하지 못해도, 지금까지의 전 지구적 무정부상태와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것은 분명하다. 무조건적 절대자유가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고, 자연과의 관계에서나 인간관계에서나 '절제'가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을 내다본다.

산업사회가 지구의 한 모퉁이에 만들어지기 시작했을 때 산업화 선발주자들의 세계정복에는 아무런 거침이 없었다. 그들의 세계정복은 인간의 자연정복과 짝을 이루는 변화였다. 2중 구조의 이 정복사업은 균형과 조화를 고려할 필요 없이 일방적으로 3백 년간 진행되었다. 1980년대 중국의 개혁-개방에 뒤이은 급속한 산업화는 이 정복사업의 한 차례 완성에 접근하면서 세계가 그 다음 단계에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미국 신자유주의자들은 온 세계를 향해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외쳐 왔다. 자기네의 자원낭비 라이프스타일을 모든 인류에게 따라 하라고 권해 왔다. 그런데 막상 13억 중국인과 11억 인도인이 정말 그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한다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파국이 명약관화하다. 

자연의 제약을 무시하던 인류의 오만을 버릴 때가 되었다. 그 오만으로 빚어진 절대자유와 절대인권의 환상이 98%에 대한 2%의 지배를 뒷받침해 왔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자연의 제약을 순순히 받아들인다면 인간사회의 조직 원리도 자유와 인권에 대해 보다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균형과 조화가 중시되는 새로운 세계체제의 필요성이 현실정치에 얽매이지 않은 아인슈타인의 눈에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세계정부 형성은 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 확충 

정치적 세계화를 바라보는 움직임은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란 이름으로 나타나 왔다. 그 이념을 아인슈타인은 '세계정부'로 표현했지만 그보다 '세계연방'이란 말이 더 많이 쓰인다. 국제주의는 민족주의와 맞서는 것도 아니고 기존 주권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민족주의와 주권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라면 국제주의가 아니라 '사해동포주의(cosmopolitanism)'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나타날 세계정부가 형태에 있어서는 지금의 유엔보다 더 치밀한 조직을 당장 필요로 할 것 같지 않다. 국제주의가 한껏 고양된 시점에서 유엔이 탄생했기 때문에 세계정부의 전망이 유엔 조직에 많이 담겨 있었다. 그 후 미국 패권의 부각에 따라 유엔의 세계정부 조직이 공동화(空洞化)하고 만 것이다. 세계정부 형성은 유엔을 중심으로 국제적 조약과 협약이 확대-강화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형태가 어떠하든 세계정부 형성이란 전 지구적 차원의 공공성 확충을 의미한다. 어떤 문명 어떤 사회에서든 지속가능성은 공공성에 바탕을 둔다. 주먹의 힘이든 돈의 힘이든 정보의 힘이든 힘의 작용에 절제를 가하는 것이 공공성이다. 절제 없이 힘이 날뛰는 정글 상태로는 어느 문명이나 사회도 오래갈 수 없다.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처럼 거대한 변화에는 상당 기간의 과도기가 필요하다. 새 체제의 건설보다 옛 체제의 파괴에 주력하는 기간이다. 대형전쟁 등 낭비적이고 불합리한 현상이 많이 일어나지만 자원 공급의 급격한 증가 덕분에 당분간 계속된다. 이 단계에서는 공공성의 원리가 극도로 약화된다. 그러나 자원 공급 증가 추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화하게 되어 있고, 그에 따라 공공성이 회복된 안정적인 체제가 자리 잡게 된다. 

근대적 현상의 핵심 요소로 꼽혀 온 개인주의가 과도기의 특징이다. 개인주의는 원자론적 세계관에 근거를 둔 것이다. 공공성의 확충은 원자론적 세계관으로부터 유기론적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원자론적 세계관이 뒷받침하는 절대적 자유와 절대적 인권의 관념이 유기론적 세계관으로는 상대화의 대상이 된다. 자유도 인권도 현실의 인간관계 속에서 제한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의 꿈을 잃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역사를 통해 실제 어떤 형태로 존재해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제체제니 봉건체제니 속박 속에 살던 상태를 근대인은 미개한 것이었다고 깔보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종이 상당 수준의 속박 속에서 살아갈 특성을 진화시켜 왔다. 그런 특성 없이는 자연조건의 속박 속에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절대인권과 절대자유는 마치 인간이 자연조건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처럼 생각한 환상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그 환상에 빠져 문명 발생 이래 사회를 보호해온 공공성의 원리를 잊어버렸을 때 힘을 가진 집단이 아무 견제 없이 힘을 휘두를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대형전쟁을 비롯한 온갖 '근대적' 참극이 일어났다.

환상을 버리고 속박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제는 어떤 성격, 어떤 수준의 속박을 어떤 방법으로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적합한 방법을 찾지 못하면 공공성이 확충된 새 체제가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고, 적합한 방법을 찾는다면 인간의 본성을 지키면서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생존과 생활의 양식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분명한 것은 환상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로버트 B. 마르크스


어떻게 세계는 서양이 주도하게 되었는가


로버트 B. 마르크스 지음 | 윤영호 옮김 | 사이 | 2014년 11월 20일 출간

저자소개

저자 : 로버트 B. 마르크스

저자 로버트 B. 마르크스 Robert B. Marks는 미국 휘티어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20년 넘게 동양사와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세계사 개론을, 그 중에서도 특히 근대 세계사를 가르치고 있다. 중국의 환경 역사에 대한 글로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 상을 수상했으며 우수 교수로도 선정되어 헤리 W. 너후드Harry W. Nerhood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15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루면서 오랫동안 세계 경제를 장악해온 동양이 어떻게 불과 2백 년 사이에 서양에게 역전당했는지, 또 서구의 세계 지배는 과연 필연적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서구인들이 인종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우월해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는 주장에 역사적 근거를 내세우며 반박한다. 또 서구가 현재와 같은 자리에 오른 것은 극히 최근의 현상으로 이는 오랜 기간 동양이 주도했던 흐름이 역전된 것이라고 말한다.

역자 : 윤영호

역자 윤영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자본의 미스터리』, 『아름다운 비즈니스』, 『고통 없는 변화』, 『진정성의 힘』, 『권력의 미래』, 『화폐의 전망』 등 다수가 있다.

목차

들어가는 글 : 도대체, 지난 2백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오랫동안 세계 경제를 장악했던 동양 / 동양은 어떻게 서양에게 역전당했는가 / 결국 서구는 우월하고 동양은 열등하기 때문에? / 서구의 세계 지배는 과연 필연적인 것인가 / 서구의 역전은 우연의 산물일 뿐 / 술에 취한 채 가로등 불빛 아래서 헤매는

제1장 : 군림하는 세력 없이 여러 체제가 공존하다
1400년대, 농업 세계의 다양한 모습들 / 인구 밀도와 문명 / 농민과 지배 계급 / 문명을 위협하는 유목민 / 토지 확장과 식량 확보 / 정부와 지주들의 착취 / 결국, 농민 반란 / 다양한 무역로가 탄생시킨 상업의 세계 / 무역로를 따라 흑사병도 전파되다 / 생물학적 한계에 갇힌 세계

제2장: 평화로운 항해 시대의 종말을 고하다
중국, 드넓은 해상으로 세력을 확장하다 / 정화의 남해 원정 / 인도양, 모두가 눈독 들인 무역의 중심지 / 인도, 고도로 발전된 경제 / 이슬람 세계, 유럽을 차단시킨 유일한 세력 / 아프리카, 거대 제국들의 대륙 / 유럽, 화약과 대포로 무장하다 / 끊이지 않는 유럽의 전쟁 / 무력을 동원한 지중해 무역 / 아시아 항로에 대한 집착 / 결국, 아시아행 열차에 오르다

제3장: 세계 경제를 장악한 동양 vs. 내부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
제국의 탄생과 소멸 / 무굴 왕조, 사파비 왕조, 오스만 제국 / 제국의 역학관계 / 공포 정치를 펼친 아즈텍 / 정복으로 지탱하는 잉카 / 유럽의 침략, 신세계의 비극 / 식량의 이동, 질병의 전파 / 신세계의 대참사 / 인디언, 착취당하다 / 유럽에는 제국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 파산하는 스페인 / 아시아, 세계 경제를 지배하다 / 유럽, 플랜테이션 경제로 도약을 꿈꾸다 / 자신들끼리의 전쟁에 목숨 걸다 / 강력한 국가의 등장 / 은이 유출되는 것을 막아라! / 영국, 서서히 승기를 잡다

제4장: 왜 산업혁명은 동양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영국의 면직물은 어떻게 인도를 물리치고 세계 시장을 장악했나 / 인도를 획득한 7년 전쟁 / 신세계라는 새로운 시장 / 중국과 영국, 역전의 시작 / 왜, 중국은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는가 / 영국의 역전 / 영국의 새로운 동력, 석탄과 증기기관의 등장 / 식민지나 석탄이 없었어도 가능했을까 / 왜 중국이 아닌, 영국이었나 / 차, 은, 아편, 강철, 그리고 전쟁 / 산업혁명의 수단을 전쟁에 이용 / 단지 그들에겐,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을 뿐이다

제5장: 동양은 어떻게 서구에게 역전을 당했는가
아편,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꾸다 / 영국이 꾸민 인도의 몰락 / 다른 나라들의 산업화, 강력한 국가가 주도하다 / 새로운 산업 경제에서 드러나는 온갖 문제들 / 도시와 공장, 열악한 근로 조건 / 노동자들의 저항과 자본가들의 억압 / 배타적 민족주의의 탄생 / 아프리카와 중국에 대한 쟁탈전 / 유럽 열강들에 의해 찢겨지는 아프리카 / 이권 쟁탈장이 된 중국 / 엘니뇨, 기아, 그리고 제3세계로의 전락 / 사회 진화론과 백인 우월주의 / 결국,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이다

제6장: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의 종식, 커져가는 격차
질소, 화약, 비료 / 30년의 위기(1914-1945년) / 1차 세계대전 / 혁명의 연속 / 식민지 독립 운동 / 1930년대의 대공황 /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 탈식민지화 / 식민지 국가들의 혁명 / 냉전 시대(1947-1991년)의 탄생과 종말 / 소련의 생산주의 vs. 미국의 소비주의 / 제3세계의 개발주의 / 지속되는 부의 격차 / 냉전의 종식 / 역사의 종말? 문명의 충돌? / 국제 자유 무역 / 에너지, 석유, 전쟁 / 과거로부터의 대이탈의 시대 / 아시아 세기의 재도래

맺는 글 : 역사는 또다시 역전될 것인가

책 속으로

아시아가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단지 우연하게도 유럽의 땅에는, 특히 영국에는 석탄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증기기관 동력을 만들어내고 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영국이 위치한 땅속에 석탄이 매장되어 있지 않았다면 산업혁명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엄청난 은광과 노동력이 풍부한 식민지가 없었다면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어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수단을 《전쟁》에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때, 마침내 아시아와 유럽이 이루었던 세계의 세력 균형은 유럽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결국,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다면 서구는 결코 이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다. 단지 아시아에는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런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이다.
--들어가는 글

13세기 세계 체제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사항은 그것이 어떤 중심 세력도 없이 기능을 발휘했다는 사실이다. 근대 세계의 체제가 하나의 국가나 국가들의 집단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체제가 중심 세력 하나 없이 운영될 수 있다는 개념은 다소 생소한 것이다. 유럽 체제는 이탈리아, 중동 체제는 아랍, 동아시아 체제는 중국 등 13세기의 모든 무역 체제에는 저마다 주도 세력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세계 체제를 장악하지는 못했다. 비록 여러 지역의 지배자들이 자신들의 상인들과 무역선들을 보호했지만 결코 물자 교역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당시 지배자들은 무역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들어오는 상인들을 무력으로 공격하여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실수를 범하려고 하지 않았다.
-제1장: 군림하는 세력 없이 여러 체제가 공존하다

인도양 무역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특징은 대체로 무력(武力)에 의존하지 않고 무역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아프리카의 다우선, 중국의 정크선, 인도와 아라비아의 상선은 모두 해군의 호위를 받지 않고 항해에 나섰다. 아덴부터 호르무즈, 캘리컷, 푸리, 아체, 말라카에 이르기까지 모든 항구 도시들은 성벽도 쌓지 않았고 요새를 건설하지도 않았다. 방대한 지역에서 무역이 이루어졌지만 군사력은 선박을 보호하거나 거래를 성사하는 데 그다지 필요가 없었던 듯하다. 하지만 1500년부터 1750년까지 포르투갈을 필두로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군사력을 동원한 무역》을 시작하면서 인도양 무역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미 인도양에서 활동하고 있던 상인들은 방어를 위해 무장하거나 새로운 침입자들에게 무사히 보호해주는 대가를 지불해야 했다. 유럽인들은 인도양에서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수익성이 큰 무역에 가담하기 위해 사실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력을 동원하여 여러 항로와 항구 도시들을 장악했고 심지어 유럽에서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물자들을 독점하기까지 했다.
-제2장: 평화로운 항해 시대의 종말을 고하다

아시아는 단지 인구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경제 생산과 생산성도 증대되었다. 1775년 아시아는 세계 생산의 약 80퍼센트를 차지했는데 아마도 그 수치는 1500년보다도 증가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세계 인구의 3분의 2(아시아인들)가 세계 생산의 5분의 4를 담당했다는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1775년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불과했던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인들과 아메리카인들과 함께 세계 생산의 5분의 1을 공유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1500년 이후 3세기 동안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생산성 높은 경제를 운영했다. 이것에 대한 증거는 신세계를 포함한 세계의 여러 지역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1500년대의 중국은 유럽보다 훨씬 값싸고 뛰어난 품질의 제조품을 생산했기 때문에 스페인이 엄청난 이윤을 거두며 장악했던 시장을 순식간에 잠식할 수 있었다.
--제3장: 세계 경제를 장악한 동양 vs. 내부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 닫기

출판사 서평

도대체, 지난 2백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세계를 장악할 정도로 부유했던 동양은 왜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가난했던 서양은 어떻게 역전하여 세계를 주도하게 되었는가?
그렇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서양의 지배는 영원할 것인가? 


▣ 15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세계사를 통해서 본 《부(富)의 역전현상》에 대하여
미국 휘티어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인 로버트 B. 마르크스가 19세기 이전까지 세계 경제와 무역을 장악하면서 오랫동안 승승장구했던 동양이 어떻게 불과 지난 2백 년 사이에 서구에게 역전을 당해 쇠락했는지, 또 지금과 같은 서구의 세계 지배는 과연 필연적이고 영원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 사이 출판사에서 나왔다.
저자는 세계사의 가장 중요한 현상인 《동양과 서양의 부의 역전현상》을 15세기부터 21세기 현재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살펴보면서, 서구가 현재와 같은 자리에 오른 것은 극히 최근의 현상으로 이는 오랜 기간 동양이 주도했던 흐름이 역전된 것이라고 한다. 《부유한 국가들과 가난한 국가들의 격차》 또한 지난 2백 년 사이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책의 《4장, 5장》은 1800년대를 기점으로 동양이 역전당하게 된 과정을 집중적으로 파헤친 핵심 부분으로, 왜 산업혁명은 당대 최고의 선진국이었던 중국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는지, 동양은 왜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는지,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다면 과연 서양이 역전할 수 있었는지 등을 다룬다. 마지막 6장에서는 21세기에 서구는 위기를 맞고 있으며, 《아시아 시대》가 재도래하면서 역사는 또다시 《제2의 역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며 끝을 맺는다.
저자가 본 1300년대부터 세계사의 주요 흐름은 다음과 같다.

ㆍ 1300-1400년: 군림하는 세력 없이 여러 체제가 공존하다.
ㆍ 1400년대 후반: 평화로운 항해 시대의 종말을 고하다.
ㆍ 1500년-1750년: 세계 경제를 장악한 동양 vs. 내부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
ㆍ 1750-1850년: 차츰, 동양은 쇠퇴하기 시작하고 서양은 부상하기 시작한다.
ㆍ 1850-1900년: 결국, 동양은 서구에게 완전히 역전을 당하다.
ㆍ 1900-현재까지: 두 번의 세계대전, 커져가는 빈부의 격차, 그리고 아시아의 재역전

▣ 세계 무역과 경제 활동, 생산성 측면에서 당대 최고의 선진국 면모를 보인 동양
1500년부터 1800년까지 동양은 세계 무역과 경제 활동, 생산성 측면에서 서구를 훨씬 앞서면서 전 세계 경제 생산의 80퍼센트를 차지한 반면 서구인들은 겨우 5분의 1만 담당했다. 또한 동양은 효율적인 시장 시스템, 해상 무역의 장악, 기술적 우위, 뛰어난 품질의 제품, 원활한 운송 체계 등을 갖추는 등 훌륭한 경제 시스템을 운영하는 동시에 산업 및 시장의 다양화, 소비 수준의 측면에서도 선진국의 면모를 보였다. 또한 1800년까지 세계 인구의 3분의 2가 동양에 거주했는데, 이는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한 추가적인 자원을 개발하는 데 동양이 성공했다는 의미를 상징한다. 당시 세계 최대의 대도시 25개 중 대부분은 동양에 있었고 서구에 속한 도시들은 다섯 개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서구는 동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암흑기Dark Ages》를 보내며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세계 경제에서 동양에게 뒤처졌다.

▣ 19세기 후반, 세계사의 대역전이 일어나다!!
하지만 1800년대 후반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전 세계 제조 산업 생산량에서 유럽이 60퍼센트, 미국이 20퍼센트를 차지하면서 세계사의 《대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18세기까지 동양은 전 세계 부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불과 2백 년 만에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되어버렸다. 반면 유럽과 미국은 더 많은 부를 축적했다. 그렇다면 동양은 왜 서양에게 역전을 당했으며, 잉키와 아즈텍, 말리 등 거대 제국을 형성했던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어떻게 제3세계로 전락했는가? 유럽의 아시아 진출을 차단했던 유일한 세력이었던 이슬람 제국은 어떻게 와해되었는가? 어떻게 산업 자본주의와 서구식 체제가 현재 우리의 세계를 규정하게 된 것일까? 이 책은 이와 같은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다.

1700년에 중국, 인도, 유럽은 전 세계 GDP 점유율에서 각각 23퍼센트를 차지했다. 1750년 중국은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제조품의 33퍼센트를 생산했고 인도와 유럽이 각각 23퍼센트를 생산하면서 전 세계 산업 생산량에서 거의 90퍼센트에 육박하는 비율을 차지했다. 1800년에도 전반적인 수치는 비슷했지만 인도의 비율이 감소하면서 유럽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1800년대 초반 전 세계 GDP와 제조 산업의 생산량에서 유럽의 비율이 급증했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중국과 인도의 비율이 급감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1900년 전 세계 제조 산업의 생산량에서 인도의 비율은 고작 2퍼센트에 불과했고 중국은 약 7퍼센트에 그쳤지만 유럽은 무려 60퍼센트를 차지했고 미국도 20퍼센트를 담당했다. 따라서 이는 세계사에서 벌어진 중대한 역전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서양의 세계 주도는 서구인들이 우월하기 때문인가? (사회진화론과 백인우월주의)
서구가 동양을 따라잡고 역전한 이유에 대해서 지난 2세기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는 《서구의 부상the rise of the West》이라는 견해가 가장 유력시 되었다. 즉 서구가 인종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동양을 따라잡아 역전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견해는 지극히 유럽 중심적이며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사고로 설득력이 없다고 말하며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씩 제시하여 그와 같은 견해에 반박한다. 더불어 최근의 역사학자들은 서구가 영구적 우월성을 갖는다는 것은 유럽 중심주의 신화일 뿐만 아니라 《진실의 왜곡》이며 하나의 《교묘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서구의 세계 지배는 흑사병, 흑인 노예, 은, 아편, 총, 전쟁과 더 많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 유럽 중심적 관점이 아닌, 《세계적 관점》으로 분석 시도
저자는 서구의 세계 지배에 대해서는 《세계적 관점global view》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나 석탄이 주변에 매장된 행운을 누린 《지리적 이점》이 서구의 부상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중국의 은 중심의 통화 체제와 아편 수요 증가, 신세계 식민지에서 발견한 은광, 질병의 전파, 유럽 내부의 끊임없는 전쟁, 흑인 노예를 기반으로 한 플랜테이션 경제, 생태적 성장 한계에 직면한 동양, 자신들의 땅속에 매장된 풍부한 석탄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난 이와 같은 《역사적 우연성》 때문에 서구가 역전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아시아의 상승과 쇠퇴, 그리고 서구의 부상은 서구인들이 우월해서가 아니라, 전 세계의 역사적 사건들과 환경적 우연, 각 지역의 상황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우연히 하나의 역사적 사태를 이룬 것뿐이다. 이런 세계적 시각에서 동서양의 역전현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 동양은 왜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고 말았는가? 
11세기 이후 세계 무역을 주도하는 경제적 근원은 아시아에 있었다. 하지만 1750년대 동양의 선진국들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생태적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모든 생활필수품, 즉 식량, 의복, 거주지, 연료 등은 모두 토지에서 나왔다. 이는 곧 태양에너지를 이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토지는 제한된 상태에서 많은 인구를 부양할 식량을 생산하려면 더 많은 노동력을 농업에 투자해야 했고, 결국 이는 산업혁명이 아닌 노동 집약적 농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토지》와 《태양》에 의존하는 생물학적 구제도는 인구의 규모뿐만 아니라 경제 생산성의 한계까지 규정했다. 동양에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새로운 토지를 제공해줄 식민지도 없었고, 새로운 에너지원인 석탄도 없었다. 결국 동양은 《생물학적 구제도》, 《생물학적 앙시앵레짐》의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문제는 그 한계를 해결해줄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행운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이다.

▣ 《식민지》와 《석탄》이 없었어도 서구의 역전은 과연 가능했을까? 
영국은 동양이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을 때 석탄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취할 수 있었고 석탄을 이용한 증기동력을 기반으로 산업화에 성공하여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석탄이 없었다면 산업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던 동양은 토지에서 얻을 수 있는 생산량을 증대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력과 자본을 토지에 투입해야 했던 반면, 영국은 신세계의 방대한 자원과 국내에 매장된 석탄을 확보하며 한계에서 벗어났다. 결국 석탄과 식민지가 없었다면 서구는 결코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다. 영국이 산업혁명의 수단을 《전쟁》에 활용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때, 마침내 세력 균형은 서구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 지난 2백 년 사이에 처음 나타난 《가난한 나라들과 부유한 나라들》 간의 격차
서구와 다른 대륙들 간의 격차는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며, 그 원인을 단순히 《시장 경제》의 성립 여부로 설명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단순화하는 것이다. 18세기 중국은 고도로 발달된 시장 경제를 유지했지만 점차 벌어지는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심각한 격차는 일부 세계들, 즉 유럽, 미국, 일본 등이 생물학적 구제도의 제약에서 탈피하여 산업화를 이룬 것으로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이 다른 가난한 국가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부를 축적했는지의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20세기의 산업화된 세계는 교묘하게 가난한 국가들을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막았다. 따라서 아시아 일부,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등이 제3세계로 전략한 것 또한 최근의 현상이다.

▣ 하지만, 서구의 세계 지배는 위기를 맞고 있다. 역사는 《제2의 역전》을 준비하고 있다!
동양이 성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안 된다. 동양은 4백 년 넘게 뛰어난 시스템을 갖추면서 세계를 장악해왔다. 서구의 우월성이나 우위 또한 지난 1천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에서 확실히 드러난 적이 거의 없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의 부와 권력의 중심은 서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했지만, 21세기에는 다시 아시아가 부상하고 있다. 과거 1400년부터 1800년까지 위용을 떨쳤던 것처럼 21세기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로 되돌아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부활을 이룬 일본, 공산당 혁명으로 막강한 군대를 구축한 후 현재 산업 경제를 운영하는 중국, 산업화에 성공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과 더불어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변화로 경제 생산과 인구에서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 역사는 이제 또다시 《제2의 역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지난 세기의 서구 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신화로 굳혀진다고 할지라도 서구가 영원히 세계를 지배하거나 그 행운의 혜택을 누릴 수는 없다.


-- 시대순으로 살펴본 세계사의 흐름과 역전현상 --

▣ 제1장 1300년대 : 군림하는 세력 없이 여러 체제가 공존하다. (본문 29쪽)

13-14세기 세계 체제는 그 어떤 군림하는 중심 세력 없이 기능을 발휘했다. 유럽 체제는 이탈리아, 중동 체제는 아랍, 동아시아 체제는 중국 등 저마다 주도 세력이 있긴 했지만 그 누구도 세계 전체를 장악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은 결코 교역을 위해 무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14세기의 세계는 《다중심적polycentric 체제》였고 1800년대 후반까지 세계는 이 체제를 유지했다. 세계가 하나의 중심 세력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닌 다중심적 체제를 통해 운영되었다는 관점은 비유럽 중심적 관점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 제2장 1400년대 후반: 평화로운 항해 시대의 종말을 고하다. (본문 63쪽)
1400년대 《인도양》은 모두가 눈독 들인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중국을 비롯해 인도와 근동 및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이 활발한 교역을 펼쳤고, 유럽은 아시아에서 생산되는 부의 원천에 접근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 주위를 맴돌았다. 특히 중국은 정화의 남해 원정을 통해 해상 무역을 주도하면서 인도양에서 막강한 세력을 구축했다. 당시 인도양 무역은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양모와 무기를 제외하면 교역할 만한 물자가 없었던 유럽은 1500년부터 1750년까지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가 《군사력을 동원한 무역》을 시작하면서 인도양 무역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유럽인들은 인도양 무역에서의 수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 제3장 1500년-1750년: 세계 경제를 장악한 동양 vs. 내부 전쟁에 시달리는 유럽 (본문 105쪽)
1500년부터 1800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생산성이 높은 경제를 유지했던 중국은 신세계에서 생산되는 엄청난 양의 은을 기반으로 초창기 근대 경제의 대부분을 주도하던 중추 세력이었다. 그 기간 동안 아시아는 세계 인구와 경제 활동, 세계 무역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반면 유럽은 아시아의 뛰어난 경제력, 몽골 제국과 이슬람 세력의 확장 등으로 상대적으로 빈곤했고 산업의 생산성도 열악했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치열한 전쟁과 경쟁을 끊임없이 벌였다.

18세기 후반, 전혀 다른 두 세계의 정면 대립
1500년부터 1775년 사이에 유럽에서는 독립 국가 체제가 발전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발발했다. 제국을 건설하려는 스페인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무너졌고 이후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가 이어졌다. 16-17세기에 급속도로 발전한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고, 그 결과 두 국가는 18세기 전반에 걸쳐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결국 18세기 후반 영국이 유럽의 최대 강국으로 부상했고,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강대해지고 인도가 쇠약해졌다. 세계적 관점에서 18세기 후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직된 두 세계가 정면으로 대립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두 세계는 바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체제》와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아메리카 체제》였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세력의 균형은 유럽 쪽으로 기울었다.

▣ 제4장 1750-1850년: 차츰, 동양은 쇠퇴하기 시작하고 서양은 부상하기 시작하다. (본문 153쪽)
중국의 은 수요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세계사에서 여러 중대한 사건들을 유발했다. 만약 중국에서 은 수요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에서 유럽의 역할은 현저히 감소했을 것이다. 중국의 폭증하는 《은 수요》와 유럽인들이 차지한 신세계에서의 《은 공급》이 적절히 맞물리면서 유럽은 아시아의 막대한 물자와 무역망을 확보하여 역전의 발판을 갖추기 시작했다. 또한 산업화로 인해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차지하면서 교역에서도 앞서나갔다.

신세계 식민지, 플랜테이션 경제, 아프리카 노예, 그리고 서구의 역전!
석탄을 활용한 증기기관은 생산량의 엄청난 증가를 불러일으키며 영국 면직물 산업을 대폭적으로 성장시켜 당시 세계 최고의 면직물 수출국이었던 인도를 몰락시켰다. 영국의 역전에 대한 원동력은 석탄뿐만 아니라 《신세계》라는 특수한 주변 지역에서도 비롯되었다. 아프리카 노예를 이용한 신세계의 플랜테이션 경제는 서구가 새로운 경제 체제를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천연자원을 싼값에 제공하는 공급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신세계는 서구의 제조품을 수입해서 소비하는 새로운 시장이 되었고, 흑인 노예는 새로운 교역 상품이 되었고, 신세계 식민지에서 싼값에 조달되는 물자는 유럽의 산업을 성장시키면서 동양과의 경쟁에서 서구가 역전할 기회를 주었다.

▣ 제5장 1850-1900년: 결국, 동양은 서구에게 완전히 역전을 당하다. (본문 197쪽)
19세기에 중국은 세계 경제를 형성하는 데 또 한 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번에는 중독성 강한 《아편》이었다. 그러나 4세기 전 은의 경우와 달리 아편의 수입과 소비는 중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럼에도 1800년대 중국의 아편 수요는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경제 활동을 자극했다. 2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으로 중국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지만, 이를 이용한 각국의 아편 수출은 세계 무역의 전체 구조를 역전시킬 만큼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다. 중국의 아편 수요와 영국과 미국 등의 아편 무역은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자본주의 세계 경제가 침체를 헤쳐 나갈 수 있도록 만든 한 가지 요인이었다. 《아편》이 중국으로 유입되고 중국의 은이 유출되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게다가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식민지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세계의 더 많은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800년대 후반 중국은 서구 열강들의 이권 쟁탈장이 되어버렸고, 아프리카 대륙은 유럽 국가들에 의해 수박조각처럼 찢겨졌고, 인도는 영국이 꾸민 계획에 의해 하루아침에 산업 국가에서 농업 국가로 전락하면서 제3세계화되었다. 또한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서구 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동양과 서양의 점차 벌어지는 격차
19세기의 상황은 전반적으로 세계가 개발된 진영과 개발되지 않은 진영,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 산업화된 진영과 소위 제3세계로 알려진 산업화되지 않은 진영으로 구분되는 과정과 관계가 있다. 생태학적 관점에서도 이 격차는 생물학적 구제도에 머무른 진영과 그 한계를 벗어나기 시작한 진영으로 세계가 구분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더욱이 19세기에 부상하기 시작한 그 격차는 단지 세계의 다른 지역들 간에 국한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사회의 내부로까지 이어졌다.

▣ 제6장 1900-21세기 현재: 두 번의 세계대전, 커져가는 빈부의 격차, 그리고 아시아의 재역전
20세기 초반에 서유럽, 미국, 일본은 산업화를 이루면서 새로이 발견한 산업의 힘으로 제국주의 군대를 육성해 경제적 목적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대부분을 식민지로 삼았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은 19세기 후반에 성립된 제국주의 체제를 송두리째 흔들었고 20세기를 《전쟁과 폭력의 세기》로 이끄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장기적인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의 종말이 시작되는 전환점이었다.
이후 유럽의 식민지 체제와 일본의 신제국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양분화된 세계를 탄생시킨 것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유럽의 산업혁명과 월등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시작되었던 《제국의 시대》는 이렇게 끝나게 되었다.

20세기 중반 이제 유럽 국가들은 지배자의 입지를 상실했다. 세계적 경제 붕괴 전후로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가 탄생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는 세계의 부와 권력의 중심이 서유럽의 핵심 국가들에서 미국으로 전환되었던 시대였다. 하지만 20세기가 《미국의 세기》라는 주장은 지난 40년에 걸친 《동아시아의 부상》을 무색하게 한다. 21세기에 아시아의 힘과 경제력이 다시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역사는 이제 또다시 역전을 준비하고 있다. 즉 세계사에 있어 《제2의 역전》이 지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영국이 거둔 성공은 세계 여러 지역들에서 발생한 수많은 사건들의 《우연한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우선, 영국은 인도산 면직물과의 경쟁에서 열세에 있었고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1688년 명예혁명으로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국은 국내의 제조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의 권력을 사용했고, 유럽이 전파한 질병으로 인한 대참사와 식민지 법령으로 특수한 상황에 처한 주변부였던 신세계는 영국 제조품들의 거대한 시장이 되었다. 또한 영국은 석탄을 사용한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면직물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고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가격을 대폭적으로 낮추면서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낮은 가격으로 면직물을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여러 요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영국은 면직물 산업에서 변화를 겪게 된 것이다.
--제4장: 왜 산업혁명은 동양이 아닌 영국에서 일어났는가

18세기의 중국, 인도, 유럽은 모두 전 세계 국내총생산에서 똑같은 비율(약 23퍼센트)을 차지했다. 그들은 당시 전 세계 경제 활동의 70퍼센트를 담당했다. 1750년 중국은 전 세계에서 거래되는 제조품의 33퍼센트, 인도와 유럽은 각각 23퍼센트를 생산하면서 전 세계 산업 생산량에서 거의 90퍼센트에 육박하는 비율을 차지했다. 1800년에도 전반적인 수치는 비슷했지만 인도의 비율이 감소하면서 유럽의 비율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800년대 초반 전 세계 국내총생산과 제조 산업의 생산량에서 유럽의 비율이 급증했고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중국과 인도의 비율이 급감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1900년 전 세계 제조 산업의 생산량에서 인도의 비율은 고작 2퍼센트에 불과했고 중국은 약 7퍼센트에 그쳤지만 유럽은 무려 60퍼센트를 차지했고 미국도 20퍼센트를 담당했다. 1900년 유럽과 미국은 전 세계 제조 산업의 80퍼센트를 장악했던 것이다. 이는 세계사에서 벌어진 중대한 《역전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제5장: 동양은 어떻게 서구에게 역전을 당했는가

20세기는 세계의 부와 권력의 중심이 서유럽의 핵심 국가들에서 미국으로 전환되었던 시대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20세기가 《미국의 세기》였다고 주장한다. 확실히 미국은 20세기 초반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장 생산적인 경제를 갖춘 국가였지만 당시에 그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포함한 30년간의 심각한 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선도적 위치에 오를 채비를 갖추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미국과 마찬가지로 나치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던 소련 또한 만만치 않은 기세를 과시했다. 실제로 누군가는 20세기가 미국의 세기 못지않게 《소련의 세기》였다고도 주장할 수 있는데 만약 소련이 없었다면 20세기의 여정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가 미국의 세기라는 주장은 지난 40년에 걸친 《동아시아의 부상》을 무색하게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부활을 이룬 일본, 공산당 혁명으로 막강한 군대를 구축한 후 현재 산업 경제를 운영하는 중국, 산업화에 성공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인 대만, 한국, 싱가포르, 홍콩과 더불어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변화로 경제 생산과 인구에서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돌아왔다. 이미 20세기 말에 미국에 이어 일본이 세계 두 번째 규모의 경제를 자랑했지만 중국이 2035년에 두 국가를 모두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6장: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의 종식, 커져가는 격차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양장)





2013년7월3일 다음 추천 저자

이언 모리스 지음 역자

최파일 옮김 역자평점 5.7 출판사

글항아리 | 2013.05.27


유사 이래 경쟁해온 동서양 문명을 비교·분석하다!

지난 200년 동안 인류가 풀지 못한 문제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전개되어온 문명을 폭넓은 시야로 날카롭게 비교·분석함으로써, 오늘날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규명한다.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역사가인 이언 모리스 교수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이 생겨난 기원전 1만 4000년부터 서기 2000년까지, 유라시아 양 끝에서 유래해 경쟁한 사회들의 발전 과정을 객관적 분석틀을 통해 과학적으로 파헤친다.

이 책은 1848년 영국이 청나라의 속국이 되면서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앨버트 공이 베이징으로 끌려가는 당황스러운 픽션으로 시작된다. 곧이어 저자는 ‘왜 실제 역사는 이런 경로를 따르지 않았는지, 왜 서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로 오늘날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답을 구한다. 각 장은 시대의 흐름을 따르면서, 그 시대 동양과 서양의 사회발전지수를 토대로 두 문명 간 비교 작업을 수행한다.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저자 : 이언 모리스

저자 이언 모리스(Ian Morris)는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이자 고전학과 월러드 석좌교수다. 영국 출신으로 버밍엄대에서 고대사와 고고학을 전공한 뒤 케임브리지대에서 고전고대 고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를 거쳐 1995년부터 스탠퍼드대에서 세계사, 고고학, 고전학을 가르치고 있다. 고전학과 학과장, 고고학센터 센터장, 사회과학역사연구소 소장, 인문과학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하며 강의와 연구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009년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으며,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이탈리아 몬테폴리초에서 발굴 조사단을 이끌었다. 빙하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데 관심을 갖고 연구중이다. 특히 생물학, 사회학, 지리학이 인류 역사를 어떻게 형성해왔는지가 주된 관심사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는 이러한 그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결과물이다. 이 책은 ‘2010 『이코노미스트』가 선정한 올해의 책’ ‘2011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주목할 책’ ‘2011 라이어널 겔버 상 최종 후보’ ‘2011 겟앱스트랙트 선정 올해의 책’ ‘2011 국제펜클럽 미국본부 선정 창의적 논픽션상’ 등에 이름을 올리면서 광범위하게 조명을 받았으며,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루마니아어, 러시아어, 에스퍄냐어, 터키어 등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사로서의 고고학: 철기 시대 그리스의 말과 사물』 『매장과 고대 사회: 그리스 도시국가의 발흥』 『고대 그리스: 역사, 문화, 그리고 사회』(공저), 『고대 제국의 역학관계: 아시리아부터 비잔티움까지의 국가권력』(편저) 등이 있으며, 「디스커버리」 「히스토리」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 출연해 전공 지식을 나누기도 했다.


역자 : 최파일

역자 최파일은 서울대에서 언론정보학과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바른번역’에서 번역을 공부했고, 역사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의 좋은 책들을 소개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 축구와 셜록 홈스의 열렬한 팬이며, 제1차 세계대전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옮긴 책으로는 『아마존』 『근대 전쟁의 탄생』 『스파르타쿠스 전쟁』 『십자가 초승달 동맹』 『대포, 범선, 제국』 『트로이 전쟁』 등이 있다.

[교보문고 제공]

목차


이 책에 대한 찬사

서론

베이징의 앨버트 | 발모럴 성의 루티 | 고착 | 운 좋게 얻어내다 | 역사의 모습 | 나태, 두려움, 탐욕 | 위치, 위치, 위치 | 계획

제1부

제1장 동양과 서양 이전에

서양이란 무엇인가? | 태초 | 동양과 서양의 시작? | 최초의 동양인: 베이징원인 | 최초의 서양인: 네안데르탈인 | 아기 걸음마 | 다시,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선사시대 피카소들

제2장 서양이 앞서나가다

지구온난화 | 에덴동산 | 일용할 양식 | 실낙원 | 달라진 낙원 | 가서 번성하라 | 예정설 | 에덴의 동쪽 | 끓이기와 굽기, 해골과 무덤

제3장 과거를 평가하는 방법

진화하는 고고학 | 쪼개지는 인류학 | 무엇을 측정할 것인가? |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 언제, 어디를 측정할 것인가? | 과거의 패턴 | 스크루지의 질문


제2부

제4장 동양이 따라잡다

방 안의 코끼리 | 신과의 핫라인 | 피와 살을 갖게 된 신들 | 와일드 웨스트 | 한 형제 | 천하의 만곽 | 최고 조상 | 산산이 부서지다 | 전차 ? 데니켄의 ‘신들의 전차’가 아니라 | 묵시록의 기수

제5장 막상막하

단조로움의 이점 | 저렴한 왕위 | 변화의 바람 | 고가 전략을 향해 | 고전 | 첨단 제국들 | 최초의 접촉

제6장 쇠퇴와 몰락

최선의 선택 | 새로운 세계질서 | 구세계 교환 | 천명을 잃다 | 끔찍한 혁명 | 더 작은 세계들 | 인내와 무기력

제7장 동양의 시대

동양이 주도권을 잡다 | 전쟁과 쌀 | 측천무후의 세상 | 마지막 혈통 | 선지자의 말씀 | 중심은 지탱하지 못한다 | 압박 | 사악한 악마의 맷돌들


제8장 세계화

세 가지 커다란 문제 | 사탄의 종족 | 포, 균, 무쇠 | 다른 강물 | 테노치티틀란의 정화 | 위인과 멍청이들 | 다시 태어나기 | 고립의 이점 | 1521

제9장 서양이 따라잡다

밀물 | 헛간의 쥐 | 제국의 왕관 | 단단한 천장 | 스텝 지대를 닫다 | 대양을 열다 | 시계태엽장치처럼 | 망원경 대결 | 철칙

제10장 서양의 시대

온 세상이 원하는 것 | 증기가 가져온 기쁨 | 거대한 분기 | 그래드그라인드들 | 하나의 세계 | 네메시스 | 동양의 전쟁 | 세계의 전쟁들 | 모든 것의 시대 | 인민의 낙원 | 동풍, 서풍


제3부

제11장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왜 서양이 지배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 것들 | 백 투 더 퓨처 | 해질녘 | 파운데이션

제12장 당분간은

역사의 묘지에서 | 차이메리카 이후 | 2103 | 최악의 시나리오 | 대경주 | 앞으로의 모습 | 둘은 만나리

부록: 사회발전에 관해

네 가지 반론 | 에너지 획득 | 조직화 | 전쟁 수행 능력 | 정보기술 | 오차 범위 |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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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이 세계를 지배한 건 지리 때문"







이언 모리스 교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 오늘날 우리의 삶은 대부분은 '서구식'이다.

국가 운영 방식도 마찬가지다. 동아시아 각국은 지난 100년간 서양의 자본주의 이론과 공산주의 이론과 씨름했다. 하지만 서양 국가가 동양의 유교 또는 도교의 가르침에 따라 국가를 통치하려고 한 적은 없다.

동양에 한참이나 밀렸던 서양은 어떻게 근대 들어 세계 패권을 쥘 수 있었을까.

역사학계의 해묵은 주제이자 논쟁거리다.

신간 '왜 서양이 지배했는가'의 저자 이언 모리스 미국 스탠퍼드대 역사학과 교수는 역사학자들이 오랫동안 머리를 싸매고 씨름해온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나선다.

하지만 단순히 산업혁명이 동양이 아닌 서양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됐다는 뻔한 답을 내놓진 않는다.

우선 책의 첫 장에 실린 논픽션부터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다.

1848년 영국이 청나라의 속국으로 편입되고 빅토리아 여왕과 남편 앨버트 공이 베이징으로 끌려간다. 자금성에 머물게 된 앨버트 공은 영국식 옷을 벗어 던지고 변발을 길렀다.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난방이 잘 안 되는 싸늘한 버킹엄 궁전의 내실에서 세상과 접촉을 끊는다.

물론 실제 역사는 정반대다. 현실에선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이 중국의 황제 도광제의 마음을 미어지게 했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중국은 '종이호랑이'로 전락한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분이 의미가 없었던 유인원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를 차근차근 복기해 내려오면서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원인을 분석한다.

저자가 분석의 틀로 삼은 것은 생물학, 사회학, 지리학. 또 문명 발전 수준을 수치로 환산한 '사회발전지수'를 고안해 동서양 문명을 비교 분석한다.

저자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는 힘과 만나게 된다면서 이를 '발전의 역설'이라고 이름붙인다.

어느 문명이든 어떤 시점에 이르면 혁신적인 변화로만 뚫을 수 있는 '단단한 천장'을 형성한다는 것. 이 단단한 천장을 부수지 못하면 그 사회는 정체되거나 붕괴하고 만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로마 제국과 중국 송나라가 몰락의 길을 걸은 것도 이 천장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송나라가 11세기 칭기즈칸에 의해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화석연료 활용법을 알아내 서양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또 역사의 주변부에 있던 지역들이 자신들의 부족한 점에서 오히려 유리한 요소를 찾아내는 것을 '후진성의 이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17세기 이전까지 서양의 주변부에 불과했던 서유럽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지리적 이점 때문이었다고 주장한다.

근대 동양과 서양의 운명을 가른 분수령 중 하나인 아메리카 발견 역시 지리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동양인이 15세기에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지리 때문에 서양인이 그곳에 먼저 도달할 가능성이 실은 더 컸다.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동양인도 똑같이 발견을 했을 테고 독자적인 산업혁명에 착수했을 테지만 지리는 서양인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아메리카를 '발견'한 서양은 아메리카에서 흘러들어온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산업혁명에 성공, 세계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1천 쪽이 넘는 이 책의 화두인 '왜 서양이 세계를 지배했는가?'는 결국에는 '서양의 우위가 이대로 끝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것이다.

"사람들이 왜 서양이 지배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지배가 지속될 것인지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지속될 것인지, 다시 말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알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당분간은 서양 우위의 세계 질서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동양의 시대는 2103년이 되어야 비로소 열릴 것이라고 예측한다.

"서양에서 동양으로의 이동은 분명히 이전 역사에서의 어느 이동보다 더 빠르게 일어날 것이지만 옛 서양 핵심부는 현재 1인당 에너지 획득, 기술, 군사적 능력에서 커다란 우위를 누리고 있고 이번 세기 전반기 내내 어떤 형태로든 지배를 유지할 것이 확실하다."

참고문헌만 수십 쪽에 이를 만큼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동원해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학계의 해묵은 주제를 고찰한 저자의 분석력은 탁월하지만 은연 중에 드러나는 서구 중심적인 시각은 아쉬운 부분이다.

원제는 'Why The West Rules - For Now, Picador'.

최파일 옮김. 글항아리.1천8쪽. 4만2천원.





yunzhen@yna.co.kr









도판목록

더 읽을거리

참고문헌

감사의 말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병신같은 논증을 보여주고 있다'는 <총균쇠>

지난 주말 지인의 집에서 조촐한 파티가 있었습니다. 여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여러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나절이 후딱 가더군요. 재밌는 시간이었습니다. 파티를 주최한 지인은 책읽는 모임에서 만나 거의 7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재밌는 건, 이 친구와 제가 책읽는 성향이 정반대입니다. 그러다보니 논쟁을 아주 많이 하곤 했습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보는 시각이 달라 항상 논쟁점이 있어 왔지요. 어떤 사건을 보아도 의견이 일치하는 경우는 많치 않습니다. 여튼 이 친구를 만나면 항상 재미있는 논쟁을 하게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책도 많아서 서재의 책을 구경하면 이질적인 책들이 모여 있는 부분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면 자기가 어떻게 책을 배열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는데, 대체로 수긍이 갑니다. 예컨대 사이즈가 같은 책만 모아놓은 코너가 있는가하면 반대편 책꽂이는 아주 아무렇게나 무질서하게 꽂혀 있는 책꽂이가 있는데, 아직 읽지 않은 책이랍니다. 그러니 역사서 옆에 실용서가 꽂혀 있는게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쪽 제일 위에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이하 여러 책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 코너는 뭐냐고 하니, 제일 별로인 책들만 모아놓은 코너라는군요. 그래서 아니, 대단한 <총균쇠>(2005년판가 왜 별루냐고 하니, 그 친구의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아...그 책은 완전 쓰레기에요!

엉? 모든 사람들이 극찬하고 있는 석학의 명서를 쓰레기라고 하다니. 하지만 워낙 이런 성향이 강한 친구라 이해는 했지요. 그렇지만 언제나 자기가 한 말에 대한 근거를 대는 친구이기에 왜냐구했지요. 그랬더니 간략히 언급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뭐, 읽은지가 하두 오래되서, 그리고 논쟁하기 피곤해서 그냥 넘어갔었지요.

근데, 어제 갑자기 이 문제가 생각이 나서 그 친구에게 멜을 보냈습니다. <총균쇠>가 왜 쓰레기같은 논증을 보여주는지 자세히좀 알려달라구요. 그랬더니 아주 장문의 답변을 보내 왔습니다. 그의 글을 보면서 대충 확이을 해 보니 예전에 읽었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 많은 부분이 설명을 요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다이아몬드가 은근쓸쩍 두리뭉술하게 넘어 간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나할까요.

제가 예전에 이 책에 대한 상찬을 한 것이 몹시 걸리더군요. 책이 두꺼워서, 그리고 읽기 훈련이 덜 된 학부때 읽어서 이런 논증의 문제점을 못보고 넘어갔나봅니다. 세계사나 문화사 개설서만 봐도 다이아몬드가 매우 작위적으로 문제를 설정하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대표작 <총균쇠>는 거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명저입니다. 이 정도의 고전을, '논증이 쓰레기'라는 평가를 내리면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제 지인이 처음일 겁니다. 제가 아는 선에서는요.

현재 알라딘에서 <총균쇠> 양장본을 반값 세일하고 있습니다. 구매해서 비판의 전문과 한 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쪽수도 표기되어 있기에 확인하기 좋습니다. 저는 신선한 재미와 충격을 받아 전문을 옳겨 놓을까 합니다. (혼자보기 넘 아까워서!) 찬사 일색의 이 명저가 어떻게 '병신같은 논증'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지 '지인의 비판'을 따라가 봅시다. 좀 길긴 하지만 아주 재미있습니다. (좀 격앙된 말투이지만 양해해서 읽어주시길~)


아래 글에 의문이 있는 분들은 이메일(epalflcl@naver.com) 블로그( http://m.blog.naver.com/epalflcl)로 문의하시길!
이곳에는 ‘헛소리를 논리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기술’들이 거의 모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들춰내면 그가 하고 있는 말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멍청하기 짝이 없는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이아몬드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역사와 논리만 몰랐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 대해하고 싶은 말의 요약이다. 
 이 책은 아주 다양한 층위의 헛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그 헛소리 기법도 아주 다채롭다. 이 모든 것을 상세하게 지적하기 위해서는 총균쇠와 같은 두께의 책이 필요할 정도다. 그러나 나는 우선 가장 중요한, 이 책이 완전히 무의미하다는 차원의 이야기부터 하고 세세한 부분으로 넘어가려 한다. 
 
 그리고 이야기 하기 전에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문명이 지금 같은 모습인 이유는 환경도 주요 요인 중의 하나였다.” 라는 주장은 누구도 반박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명이 지금 같은 모습인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이유는 환경 때문이다.” 라는 주장은 아주 이상하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바로 후자의 주장을 하고 있다.
 
 그는 결코 ‘문화’를 논지에서 끌어들이지 않는다. 모든 문화적 차이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환경은 바로 궁극적 원인이다. 이것은 언뜻 듣기에는 제정신 아닌 이야기 같다. 그리고 자세히 들어보면 확실히 제정신 아닌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대답하려고 하는 질문은 책의 서두에도 썼듯이, 한 뉴기니 인이 물어본 “왜 우리는 저런 것들을 가지지 못했죠?” 라는 질문이며, 그 질문은 왜 ‘유럽’이 다른 문화권과 다르게 기술적 우위도를 가지고 세계를 점령했으며, 다른 문화들은 왜 그러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답을 그는 간단하게 ‘환경’ 때문이라고 한다. 
 이 핵심 축을 잊지 말고, 이 녀석이 대체 얼마나 심각하게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시작해보자. 
 
 가장 커다란 헛소리는, 내가 보기에는 다음 네가지다. 
 
 1. 책의 주장과 내용의 불일치 
 2. 유라시아의 단어 사용
 3. 유라시아에서 유럽으로
 4. 환경결정론
 하나 하나 알아보자. 

 1. 책의 주장과 내용의 불일치.
 
 이 두꺼운 책의 80%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이야기다. 그가 궁극적 원인으로 사용한 ‘환경’이라는 것이 무언가 보자. 
 
 작물화 할 수 있는 식물
 가축화 할 수 있는 동물
 농사지을 수 있는 땅
 옆으로 전파할 수 있는 패쇄적이지 않은 지형
이것들이 충족되면 민족은 농업을 하게 되고(틀린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인구가 늘어나서 정착 사회가 되면 중앙집권 사회가 되고, 인구가 많아지면 문화가 생겨나며, 그곳에서 기술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기술은 전파된다. 
 그리고 가장 최초 농경지는 메소포타미아다.(틀렸다) 그리고 거기서 나온 문화들이 유럽에 전파되었다는 것이다(틀렸다). 그래서 유럽은 ‘가장 오랫동안’ 발달 할 수 있었다는 논리다.(틀렸다) 
 
 자자, 이 말을 하나하나 다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조금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는 유럽의 기술적 우위를 설명해야한다. 그게 먼저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는 책의 50% 이상을 선사시대에 왜 유라시아가 농경에 적합했는지, 왜 다른 지역들은 부적합 하였는지 설명하고 있다. (남은 40%는 심지어는 이것과도 별 연관 없는 헛소리다. 10% 정도만 그의 논리에 봉사하고 있는데, 그것들도 죄다 헛소리다) 그러나 그가 초반에서 설명하는 장면은 15세기 스페인이 잉카를 멸망시키는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스페인이 잉카에 없는 말과 총 때문에 이겼다(틀렸다)고 한다.
 즉, 질문은 그 15세기에 문명들간 기술적 격차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이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15세기에 문명들을 꼽아보면, 중국, 인도, 아랍, 베닌, 콩고왕국, 아즈텍, 잉카, 아나톨리아,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명들의 발달 정도는 사실 유럽과 많이 다르지 않았다. 그가 문자도 없었다는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는 상당히 많은 아프리카 왕국들이 있었고, 그들 중 다수는 포르투갈과 교류하고 있었다. 가나 왕국, 말리 제국, 손가이 왕국, 사넴 보르누 왕국 등이 그러하다. 이것들 모두 사하라 이남에 있었으며, 그 중 툼북투는 7세기에 모든 지성과 모든 책이 모이던 지식의 중심지였다. 사하라를 관통하는 교역망은 무수하게 많았다. 
 1486년 경에는 포르투갈과 아프리카의 베닌 왕국이 서로 교역을 했으며, 그 두 왕은 서로 서신 교환을 했다. 그 후 100년 이상이나 그 둘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무역에서는 베닌인의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무역 자체가 패쇄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1555년 영국 상선의 승무원이 사향고향이를 훔쳤을 때는 그것이 소유자의 손에 돌아올때까지 교역이 중단되기도 했으며, 그때 선장은 “이곳 아프리카 인들은 일단 장사에 관한한 조금도 빈틈이 없다.” 라고 했다. 또한 베닌의 수도를 여행한 네덜란드 인들의 기록은 “도시가 매우 큰 규모이며, 거리에는 아주 넓은 도로가 있다. 암스테르담의 와르모 거리보다 8배는 넓어 보인다. 도로는 직선으로 뻗어있고 전혀 구부러지지 않았으며, 도로들은 너무 길어 끝을 볼 수가 없다. 집들은 가지런히 세워져 있으며... (중략) 왕의 대리인은 멋진 옷을 입고 왕을 대신하여 인사를 보내며 유럽과 네덜란드의 소식을 묻고 왕으로부터의 선물로서 갖가지 과일을 나누어준다.” 등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 외에도 “서 세네갈의 워울로프족의 왕은 약 1만의 기병과 10만의 보병을 전장에 투입할 수 있다.” “서 수단의 말리의 왕은 2만의 기병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보병을 동원할 수 있었다.”
 
  조금 길어졌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이아몬드가 문명의 격차가 벌어진 시점으로 두고 있는 15세기에는 문명들의 차이가 결코 그리 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잉카와 아즈텍의 문명이 유럽보다 뛰어난 점도 많았으며, 학문적 수준 중 일부는 유럽인들이 엄두도 못 낼 수준이었다는 것도 말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철기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확실히 환경적 요인이 큰데, 물론 다이아몬드 식의 환경적 요인은 아니다. 해발 4500의 고지에서는 용광로가 철을 달굴 정도까지 온도내기가 힘들었다. 
 
 만약 다이아몬드가 철기 생산의 시기와 그 어려움의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 이야기 했더라면, 이해할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는 철기 이야기는 빼놓고 오로지 농경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는데, 농경은 이미 잉카의 전신인 안데스 문명부터 발달해 있었다. 
 
 즉, 그들이 그곳에 그렇게 고밀도의 농업사회를 이루었다는 것 자체가,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나 주장하던 환경적인 상황들을 이미 모두 극복하거나, 도리어 유용하게 사용하는 문명권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된다. 다이아몬드는 스페인이 총으로 그들을 죽였다는 이유로 기술격차가 엄청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주장을 할 것이라면 철제조에 대해 이야기 해야지, 수렵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대체 문화의 발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술의 발달이란? 총을 만든 것? 아니, 사회구조나 농경이라는 측면에서 잉카는 그 지역에 가장 적합한 문명을 가꾸었다. 그들은 심지어 윗동네 아즈텍과 상당히 잘 지내는 방법도 터득했다. 유럽은 결코 터득하지 못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는 두 문명의 격차가 선사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이 말에는 문명간의 격차가 어마어마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건 마치 상당히 잘 짜이고 환경에 적합하게 잘 만들어져 있는 집에 웬 난봉꾼이 총을 들고 사람들을 다 쏴 죽인 후, “오 이런 야만인들, 총이 없다니!” 라고 소리치는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리고 다이아몬드는 “세상에, 어떻게 그들은 총이 없을 수 있지?” 라고 하며 그 집이 세워진 땅을 마구 훑어보고, “이곳은 우리 집과 같은 토양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총이 없지!”라고 말한다. 심지어 그놈도 총을 다른데서 받아온 것이면서 말이다. 
 
 하여튼, 다이아몬드가 그 두꺼운 책에서 논증하고 있는 수많은 부분은 선사시대에서 농업사회로 변해가는 어떤 과정에 대한 (굉장히 틀린) 서술이다. 그 뿐이다. 이것이 내용이다. 하지만 그가 대답해야 할 것은, 15세기에서 상당히 고도로 발달된 사회 사이에서 왜 유럽만 이길 수 있었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다이아몬드의 글들은 전혀 그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유라시아에서 농경이 많이 발달했느니 어쨌느니 하지만 그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거나 반박하지 않아도, 그 당시에 유럽과 엇비슷한 문명들을 가진 문화가 꽤 많았다는 것 자체가 그의 논의를 무용하게 만든다. 
 
 전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위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옆으로 전파가 쉽다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이다. 하지만 일정 수준의 문명이 발달한 시기에서는 그 환경적 제약 조건들이 상당수 극복된 다음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문화들이 마치 선사시대 작물들이 퍼지는 것처럼 퍼진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것도 틀린 말이다. 
 간단히 말해서, 
 
 “너는 선사시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네가 말해야하는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두꺼운 책의 대부분은 버려도 좋다. 

 
 2. 유라시아의 단어 사용. 
 
 개인적으로는 이게 걸작이다. 
 
 그의 주장은 살펴보면, ‘유라시아는 농업에 유리했고 전파에도 유리했기 때문에 다른 대륙보다 우월했다. 이것이 우리는 총을 만들 수 있고 너희들은 못 만든 이유다.’ 라고 한다. 유라시아란 유럽부터 일본까지 그 거대한 대륙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건 정말 읽어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데, 그는 유라시아라는 단어를 아주 독특하게 사용한다. 그는 스페인이 잉카를 멸망시킨 장면에서는 “어째서 아메리카 문명은 유라시아 문명에 뒤졌던 것일까?” 라고 말한다. 그리고 유라시아가 환경적으로 유리했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을 언급한다. 특히 메소포타미아, 중동을 주로 언급한다. 그곳의 작물이 어떻고, 가축은 여기 태생이고, 등등. 
 
 무척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전부 읽어도 유럽지역이 환경 좋다는 이야기는 티끌만큼도 안 나온다. 거의 오직 중동이 땅이 좋다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는데, 그도 그럴것이 사실 유럽의 환경은 사람 살기에 그리 좋지도 않았을뿐더러, 우리가 지금 유럽이라 부르는 문명권들의 시기는 상당히 늦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기원후 400년 지나서야 메로빙거 왕조가 나왔고, 로마, 그리스는 아무리 올라가봐도 기원전 700년대 근처다. 이것은 이집트, 인도, 수메르, 중국 등에 비하면 진짜 엄청 늦은 문명권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유럽이 농경에 좋았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메소포타미아가 훌륭했고, 유럽은 그걸 상속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라시아’를 최고라고 친다. 
 이런 유라시아의 너무 자유스러운 단어 사용은, 책 전반에 걸쳐 보인다. 총을 쏜 것은 유라시아 유럽이도, 환경이 좋은 건 유라시아 메소포타미아, 혹은 중국이다. 심지어 그는 중동이란 단어도 안 쓴다. 중국도 거의 예로 들지 않는데, 왜냐하면 중국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자) 그리고 이 책을 통틀어 인도 이야기는 정말 전혀 안나온다. 인도는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기원전 4000년 경에 이미 아주 복잡한 힌두 교리를 발전시키고 엄격한 사회제도, 그리고 화려한 문학이 있던 곳이다. 하지만 그는 결코 인도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같은 유라시아인데도 그렇다. 
 
 책을 읽어본 자는 한 번 유라시아라는 단어를 이놈이 어떻게 쓰고 있는지 유심하게 다시 한 번 보기 바란다. 아주 기막히단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이 등장하는 것은 고작해봐야 세균, 혹은 언어, 기술에 대한 이야긴데, 이 3가지 모두 죄다 헛소리고, 그가 이제까지 했던 선사시대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 유라시아에서 유럽으로
 그는 놀랍게도 에필로그까지 유럽 이야기를 안한다. 왜 유럽이 그렇게 총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 하지 않고 있다. 아마 여기서 멈췄다면 이 책은 ‘유라시아 중심주의’ 라는 평을 받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만, 그럴 수는 없잖은가? 총을 쏜 것은 유라시아에 속해 있는 메소포타미아나 중국 문명이 아니라 유럽이었으니까. 
 결국 그 많은 유라시아중에서도 왜 하필 유럽이 ‘선택’ 받았느냐는 질문을 그는 피할 수 없으며,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논증일 수 있다. 그런데 그는 이 논증을 에필로그까지 질질 끌다가, 에필로그 601p부터 시작하여 608p로 끝낸다. 단 7페이지로! 게다가 이 논증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요약해보겠다.
 
 중국은 유럽보다 기술이 발달했지만 뒤쳐졌다. 왜일까?
 유럽은 분산되어 있어서 서로 싸우느라 기술을 받아들이는데 열심이었다. 
 중국은 통일 되어 있어서 그러지 못했다. 
 
 그는 이걸 만성적 통일과 만성적 분산이라고 하는데, 여기까지는 유치하긴 하지만 그리 수긍하지 못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다음 논리가 기가 막힌다. 그는 그 차이를 ‘문화’가 아니라 ‘환경’으로 설명하기 때문인데,
 
 유럽은 해안선이 복잡하고 산맥도 많아서 분리되었다.
 중국은 해안선이 단순하고 강이 동서로 서로 연결하고 있어서 통일하기 좋았다. 
 이건……. 뭐랄까…….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참. 이 요약은 진짜다. 605p를 보라. 정말 이 말을 하고 있다. 재미난 문장 하나를 인용하겠다. 
 
 “유럽은 여러개의 높은 산맥(알프스, 피레네, 카르파티아, 노르웨이 산맥) 때문에 언어, 민족, 정치 등의 측면에서 각각 독립적인 단위들로 조각조각 나누어져 있는 반면, 중국에서 티벳 고원 동쪽에 있는 산맥들은 그리 대단한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혹시 이 티베트고원 동쪽에 있는 산맥들이 히말라야 산맥의 지류들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중국은 거대한 나라다.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말하는 멕시코 북부의 사막(그는 이 ‘사막’ 때문에 남북 아메리카가 서로 교류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긴 관목과 선인장들과 낮은 풀, 사막영양 등 짐승도 꽤 살고 있고,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모래로 뒤덮인 부분은 극히 일부다;)만한 사막이 몇 개는 있다. 높은 산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국의 서남지방은 아예 산악지대이며,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산과 산맥이 모두 중국에 있다. 정글에서부터 사막, 만년빙산 까지 중국에는 모조리 다 있다. 그는 유럽이 가지고 있는 그 산맥들이 자랑스럽게도 커보이고, 중국은 평평하다고 생각하나본데, 이는 그가 중국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지식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유럽의 국경선을 보면 그 산맥대로 분할된 것조차 아니지 않는가? 유럽의 국가는 엎치락 뒷치락 제 멋대로 갈라졌다가 분할되었다가 그랬다. 그는 유럽에 대해서도 틀렸고, 중국에 대해서도 틀렸다. 그리고 해안선은……. 아무리 읽어도 대체 왜 해안선이 통일과 분산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들쭉날쭉 하면 그곳에 모두 한 국가가 들어선다는 의견인 것 같은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4. 환경 결정론
 네 번째는 그냥 이 논의 자체다. 그는 문화가 아니라 환경이 문명의 발달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것은 결정론이 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같은 환경에서 다른 문명이 발달한다고 인정하는 순간, 환경은 부수적인 요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환경이 모든 것의 궁극적 원인이다.’ 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중국이 통일된 것은 해안선이 단조롭고 거대한 중국에 별 장애물이 없어서이다.” 라는 미친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가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제 2의 진나라, 제 3의 진나라가 자연스레 통일을 했을 ‘운명’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그럼 대체 수백개로 쪼개지거나 했던 시절에는 해안선이 복잡해지기라도 한 것일까?
 여하간 이런 미친 주장은, 방어하기가 너무 어려운 까닭에 역사학을 조금이라도 배운 자라면 주장하지 않을 법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그는 이걸 환경 때문이라고 했지만, 뒤에서 점점 알아보겠지만 그 중 무엇도 설득력 있지 않다. 
 
 이제 부터는 세세하게 장을 따라가며 이상하다 싶은 부분들을 짚어내겠다. 

 
 2장
 
 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인들은 철을 사용하는 수준까지 나갔을 때, 폴리네시아에는 그런 발전이 전혀 없었다. 뉴질랜드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금속 매장량이 없었기 때문이다...  91p
 그 이후로 쭉- 폴리네시아가 왜 발전을 못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아마도 이 부분에서 그의 논증은 맞을 것이다. 다이아몬드 말대로 폴리네시아의 섬들은 너무 작다. 
 
 하지만 내가 제기하고 싶은 문제는 이런 비교가 무척이나 비열하단 점이다. 그는 유라시아 전체와 그 지도에서 보이지도 않는 섬으로 이루어진 폴리네시아의 섬들을 비교했다. 그리고서 그것들이 ‘자연의 실험’ 이라고 칭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환경의 영향이 큰 곳이 있을 수 있고, 적은 곳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조그만 섬에서는 당연히 클 수밖에 없으며, 다이아몬드의 논증이 맞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이 이것들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떤 비슷한 대상을 비교한 후, 그 차이가 진정으로 환경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 예를 들어 뉴질랜드와 영국은 적절한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러나 후에 가서 알겠지만, 그는 결코 이런 비교를 하지 않는다. 


 
 3장 
 
 아타우알파에게는 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스페인처럼) 남아메리카를 벗어나 해외로 팽창할 수가 없었다
피사로가 카하마르카에 오기까지는 배와 더불어 중앙집권적 정치조직도 필요했다. 그래야만 스페인이 자금을 마련하고 그 배들을 건조하고 선원들을 고용하고 장비를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잉카 황제에게도 중앙집권적 정치조직은 있었지만, 그 경우에는 오히려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함으로써 잉카족의 명령계통은 고스란히 움켜쥐게 되었기 때문이다. 잉카의 관료 체제는 신과 같은 존재인 절대 군주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므로 아타우알파가 죽자 송두리째 와해되고 말았다. 해양기술과 정치조직은 유럽인들이 다른 여러 대륙으로 팽창하거나 다른 민족들이 팽창할 때에도 역시 근본적이 요소로 작용했다.
 스페인들이 페루에 올 수 있었던 또 한가지 요인은 문자의 존재였다. 잉카 제국에는 문자가 없었지만 스페인에는 있었다. 정보는 문자를 사용할 때 훨씬 더 멀리, 더 정확하고 자세히 전파된다. 콜롬버스의 항해와 코르테스의 멕시코 정복에 대한 정보가 곧 스페인에 전재히면서 스페인들이 신세계로 밀려 들었다. 잉카는 이런게 없었다...  109p 
 
 3장은 스페인이 잉카를 전멸시킨 일화를 죽 늘어 놓으며, 어떻게 이런 격차가 생긴걸까? 하고 묻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여러 가지로 잘못된 곳들이 많다. 
 우선, 위에 인용한 부분을 봐 보자. 언뜻 보면 별 문제 없는 문장 같지만, 자세히 봐 보면 순수하게 헛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문단의 문맥은 왜 잉카는 스페인에게 가지 못했을까? 어떻게 스페인은 잉카에게 갈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이다. 거기에 다이아몬드는 초반에는 스페인은 배가 있었고, 배가 있었던 것은 중앙집권 사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렇다면 당연히 뒤의 문장은 잉카가 배를 만들지 못한 이유가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잉카는 중앙집권 문명을 가졌고,... 그 다음에 다이아몬드는 “그것이 그 경우에는 오히려 불리했다. 왕을 잡으니까 명령계통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이것은 왜 잉카는 항해기술이 없었는가에 대한 질문과 아아무 상관이 없다. 이 헛소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스페인이 잉카를 침공한 것처럼, 왜 잉카는 스페인을 침공하지 못했을까?
 배가 없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중앙집권 정치 제도 때문에 배를 만들 수 있었다. 
 잉카는 중앙집권 정치 제도 때문에 전투에서 졌다.
 ...다섯살 먹은 어린애도 이게 무슨 소리냐고, 이게 어떻게 논리냐고 반박할 수 있을 정도다. 이건 그냥 제 생각의 연관 없는 나열이다! 아니, 스페인이 중앙집권 조직 덕분에 배가 있다면, 당연히 잉카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하다 못해 “잉카도 중앙집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 때문에 배가 없었다.” 라고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말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다시 또 은근 슬쩍 문자에게 책임을 넘긴다. 그들이 진 것은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보 전달력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그의 비열함은 또 드러난다. 책을 읽어보면 그가 스페인이 잉카를 친 이야기만 하고 있으며, 그것이 ‘가장 인상적인 사건’ 이라고 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그게 가장 인상적인 사건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 전에 (다이아몬드도 지나가듯 이야기했지만) 코르테스가 멕시코시티에서 아즈텍을 점령시킨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잉카제국과 완전히 같은 일이 더 다이나믹 하게 펼쳐졌다. 
 
 그리고 아즈텍에는 나우틀리어라는 문자가 존재했다. 심지어 코덱스(네모난 현재의 책 형태) 형태로 있었다. 스페인은 보이는 모든 책을 구덩이에 집어 넣고 불태웠다. 베르나르디노 사군이 아즈텍의 책들을 숨기고 보존했기 때문에 간신히 아즈텍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만큼 우리는 아즈텍이 어떤 문명과 문화를 이루었는가에 대해 알 수 있다. 잉카는? 별로 자료가 없다. 
 
 스페인은 아즈텍을 멸망시키고, 연이어서 잉카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왜 그는 잉카를 선택하여 스페인과 비교했던 것일까? 자료도 거의 없고, 문자도 결속문자밖에 없어서 우리가 알기어려운 잉카를? 그리고 스페인이 그들을 멸망시킨 것은 그들이 문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자가 있었던 아즈텍도 멸망시켰으면서 말이다. 아즈텍과 잉카의 멸망사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남아메리카 문명이 구식이었고 신석기 문명에 불과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으나, 사실 그것은 어느정도 의도한 비교다. 
 

 4장. 식량생산의 기원

 120p 그림 1 
 
 이 그림은 이 책의 모든 것을 요약하는 그림이며, 당연히 그에 맞게 멍청한 그림이다. 지금 책이 있으신분은 한 번 펼쳐서 보라. 여기에서 내가 왜 이 책 전부가 쓸모없는지에 다시 한 번 이야기 해보면, 15세기에는 이미 “인구가 많고 조밀하여 계층화된 정주형 사회”가 많았단 거다. 그가 왜 유럽만 기술이 발달했는지에 대한 대답을 말하고 싶으면, 그가 화살표 하나로 처리해놓은 정주형사회->기술 그 사이를 서술했어야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 의미도 없이 수렵에서 정주형 사회로 가는 현상만을 주구장창 서술하고, 정작 가장 중요한 기술로 가는 곳은 완전한 공백으로 놔두었다. 
 
 그는 가축화와 작물화, 그리고 말이 고대세계에서 중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조밀한 인구밀도를 가진 정주형 사회를 만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몇 번이고 말했듯이 아주 다양한 환경에서 바로 그 조밀한 인구밀도를 가진 정주형 사회들이 나타난다. 그의 논지는 아주 몇몇 부분(딱 대놓고 말하여 중동)에서만 적합한 이야기이며, 그는 그렇기 때문에 중동 외에는 환경이 안 좋아서 그렇게 농경 사회가 발전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왜 어떤 지역에서는 환경이 좋은데도 농경으로 발달하지 않았는가? 
 

 5장. 인류역사가 갈라 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이 장에서는 사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를 쭉 한다. 여기서 볼만한 것은 151p의 그림과, 155p의 셋째줄 뿐이다.
 
 “반대로 서남아시아 농작물 및 가축의 야생 조상도 서유럽에 없었다. 그러므로 서유럽에서는 식량 생산이 독립적으로 시작되지 않았음이 분명해보인다. 서남아시아의 가축과 작물이 들어오면서 식량생산이 촉발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이다. 그는 유산자 무산자를 말하면서, 유럽은 도저히 최초 농경생산자에 들어갈 수 없음을 인정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실이니까. 이 문장을 잘 기억해 놓고 있으면, 그가 후반부에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그 문명은 생산이 좀 늦었기 때문이다. 시간만 더 있었으면 우리처럼 총을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의 ‘지각이론’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은 농경이 가장 늦은 지역이었다. 그러면 어째야하는가? 믿을 건 가장 가까운 농경의 근원지, 메소포타미아(중동지방)다. 후에 그가 왜 그렇게 유라시아 유라시아, 메소포타미아 메소포타미아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몇 페이지나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더니 결국 마지막에서는 “식량생산이 시작된 시기와 양상이 이처럼 지리적으로 달랐던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것은 사실 그 전 장에서 했던 질문이다. 

 

 6장 식량생산민과 수렵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이 장에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농경과 채집의 대비다. 이곳에서 그는 아주 괴이하기 짝이 없는 논리를 세운다. 
 그는 스스로 아주 후대에 와서까지 농경을 시작하지 않았던 이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 중에는 독일도 끼어 있다. 
 “독일 북부 해안의 여러 민족은 독일 내륙에서 선형토기 문화를 일으킨 민족이 200킬로미터 밖에 안 되는 곳까지 식량생산을 도입해왔는데도 그로부터 130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식량생산을 시작했다.” -161p
 
 자, 이 질문에 그는 스스로 어떻게 대답했을까? 대답은 어처구니 없게도 농경은 ‘진화’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161p)
 
 식량생산은 결과를 짐작하지 못하고 내린 여러 결론들의 한 부산물이다. -160p

 그는 무의식적인 결과들이 농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질문은 어째서 지역마다 그 시기가 달랐는지 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가지 말고, 농경이 진화라는 이 기상천외한 주장부터 검토해보자. 그는 선사시대인들은 농경을 처음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농경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씨를 뿌리면 그것이 자라난다- 라는 자연의 현상을 인위적으로 우리 집 마당에 뿌린다는 생각은 사실 그렇게까지 혁신적인 사고는 아니다. 나무 조각 두 개를 비벼서 불을 낸다는 사고보다는 훨씬 더 간단한 사고다. 실제로 그는 163p 말하고 있지만, 20세기에 발견된 수렵채집민들도 농경을 하지 않을 뿐이지 농경에 대한 기본적 아이디어들은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튼간 농경이 진화라고 생각하는 다이아몬드가, 왜 그들이 서로 발전이 달랐는지 지적하는 이유들을 보면 기가 막힌다. 165p를 보면, 그는 사냥꾼은 자기 위신을 고려해야하고, 음식의 선호 순위는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부여하는 상대적 가치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 페이지를 읽으며 기가 막혔다. 모든 것을 환경으로 설명하겠다는 사람이, 자신이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 이르면 아주 태연하게 문화적인 차이, 구성원들의 의식을 끌어 들인다. 음식의 선호 순위가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따라서 변하는 것이야말로 환경적인 이유로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그 외에 있는 내용은 마치 정말 대단한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어조로 말하지만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들이다. 채집과 농경은 장기간 병행되었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이곳저곳에 전파 되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바로 현대 한국에서도 오지에 사는 농사꾼은 수렵도 함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식량생산과 수렵채집은 상호 경쟁의 대안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어느 부분은 왜 농경을 늦게하였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이 될까? 그것들은 왜 독일 북부 애들은 바로 아래에 농경문화가 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전혀 아니다. 정말 간신히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문화적 요인’이 정도이다. 하지만 그 대답조차 설득력이라고는 전혀 없다. 땅도 좋고, 옆에 농경사회가 있는데도 농경하지 않는 케이스에 대해 그가 하는 말이 있는지 앞으로 읽으면서 찾아봐도 좋다. 하지만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그는 어째서 채집이 농경으로 변했는지 설명한다. 제시한 원인은 4가지다. 

 1. 야생먹거리가 줄었다. 
 2. 그와 반대로 작물화의 보상이 많아졌다.
 3. 농업에 필요한 기술(낫, 공이, 맷돌)이 발달했다.
 4. 인구가 증가했다. 
 이에 대해 비판하기 전에, 다음으로 넘어가자. 다음 질문은 
 
 “20세기까지 수렵채집민으로 남아 있는 민족들은 왜 그러한 것이었는가?” 170p

 대답은, “수렵인들은 인구밀도가 높은 농경민들에게 공격당하고 쫓겨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수렵채집민으로 남아 있는 민족들은 환경이 거칠어서 공격을 받지 않은 것이다.” 이것인데. 그러면서 멋진 말로 결론을 내린다. 
 
 “(20세기까지 채집민인 부족들)그러나 그들도 결국 20세기가 다 지나가기 전에 문명의 유혹에 굴복하거나, 관료 또는 선교사들의 압력에 못 이겨 정착하거나, 아니면 병원균 때문에 죽고 말 것이다.”
 라고 말이다. 나는 이 논지에 대해 한가지 부분은 동의하겠다. 농경민들이 침략하기 때문에 수렵인들이 줄어든 것이라고 말이다. 
 다이아몬드가 이야기한 전제들만 가지고 생각해보자.
 
 농경민들은 왜 농경민이었고, 채집민은 왜 채집민인가? 그 둘을 가르는 이유는 다이아몬드가 말했듯이 하나다. ‘야생동물이 줄어들어서.’ 채집의 효율성이 떨어진 것이 이유다. 그렇다면 현대까지 채집민의 생활을 영위하는 부족들은 왜 그렇게 유지할 수 있었는가? 야생동물이 줄지 않아서. 이다. 간단히 말해서 수렵채집으로 먹고 살만 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북부인들이 바로 아래에 농경민이 있는데도 한참동안이나 농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업과 채집으로 충분히 먹고 살아갈만 한데, 농사일을 지을 필요가 어디있는가?
 다이아몬드는 조금 간과하는 것 같지만, 농사일이라는 것은 극히 비효율적인 생산형태다. 사냥과 채집으로 생존할 수 있다면, 농사일은 할 필요가 없다. 농사는 1년을 두고 해야 하며, 기후에 따라 그 1년의 고생이 모두 없어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불확실한 곳에 노동력을 투자하기는 엄청나게 해야한다. 그런데도 농경문화가 꽃핀 것은, 인구가 늘어나면서(일정이상의 인구가 되면 수렵채집으로 살아남기에 한계가 있다)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농경이었다. 사실 이 농경이란 것이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며, 선사시대 인들은 다만 무엇이 더 효율적인가 따졌던 것이며, 채집에 비해 노동비 효율면에서 극히 떨어졌던 농경으로 생활패턴을 바꾸는 것은 어쩔 수 없을 때만 그랬다. 기술의 발달은 그 후에, 떨어지는 효율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리기 위한 필요의 산물이라고 봐야한다. 
 다이아몬드의 전제에서도 이와 같은 결론은 충분히 끌어낼 수 있으며, 이것은 정론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런 모든 것은 그저 간과함, 농경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채집민이 사라진 큰 이유가 농경민의 공격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지막 문장에서는 ‘문명의 유혹, 선교사의 압력, 병원균’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6장 전체동안 채집민이 농경민이 되는 과정으로 문명의 유혹, 선교사의 압력, 병원균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적된 것은 단 하나, 군사적 공격이다. 
 
 그리고 후반부에도 이야기하겠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수렵인이 아주 오랫동안 수렵인으로 남아 있는 이유가 다만 그것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다만 환경이 안 좋아서, 혹은 폐쇄되서 그랬다는 이야기만 계속 지껄이고 있다. 
 

 7장. 야생먹거리의 작물화.
 자, 여기에서는 그의 기가막힌 논리, 농경은 진화다- 라는 것이 실제로 어떤 식의 근거 위에서 세워져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바보 같은 소리로는 올림픽에 나가도 될 정도의 논지를 구사하고 있다. 
 
 그는 첫장에서 야생작물 중에는 독이있는 것도 있다. 아몬드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현재의 아몬드로 작물화 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179p에 이렇게 설명하고 잇다. 
 "야생 아몬드의 종자에는 대부분 지독한 쓴맛이 나는 아미그달린이라는 화학물질이 함유되어 있어 그것이 분해되면 시안화물이라는 독이 생긴다. 그 쓴맛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짜고짜 야생 아몬드를 먹어치우는 바보는 죽을 수도 있다. 도대체 야생 아몬드를 작물 화할 때 어떻게 그 첫 단계(종자 채취)를 거칠 수 있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은 어쩌다가 몇 그루의 아몬드 나무에서 유전자 하나에서 돌연변이가 생겨 쓴맛이 나는 아미그달린을 합성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야생 생태에서라면 그런 나무는 새들이 발견하고 종자를 모두 먹어버리므로 후손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초기 농경민들의 아이는 배가 고파서 또는 호기심 때문에 주변의 야생 식물들을 모두 먹어보면서 다니다가 결국 쓴맛이 없는 아몬드 나무를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농민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쓴맛이 아니라 단맛이 나는 도토리가 열리는 떡갈나무를 찾아내곤 한다.) 고대의 농경민들은 이렇게 쓴맛이 없는 아몬드 종자들만을, 처음에는 쓰레기장에서 무심코, 그리고 나중에는 과수원에 의도적으로 심었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반박을 해야 한다는 것이 슬프게 여겨진다. 이것은 그냥 뭐랄까, 유머게시판이 어울리는 글이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농사는 진화다’의 근거다. 거의 순전한 가설, 상상. 그리고 그 상상조차 천치가 아니라면 하지 않을 법한 상상. 
 
 저건 마치 야생 독개구리 중 어쩌다가 독이 없는 개구리가 나왔는데, ‘배가 고프거나 호기심 때문에’ 그 개구리들을 먹던 아이들이 어쩌다가 그 독 없는 개구리를 먹고 나서 그걸 양식화 했다는 것이다. 
 
 아니 걔들이 그걸 왜 먹는데;;;; 먹으면 죽는다며;;; ‘쓴 맛의 경고를 무시하고 다짜고짜 야생 아몬드를 먹어치우는 바보는 죽을 수도 있다’며;;; 어린애들은 배가고프고 심심해서 다짜고짜 먹었나보다. 그리고 죽었다. 그러나 그걸 보고도 다른 어린애들은 다짜고짜 먹었다. 그렇게 얼마나 많은 어린애들이 죽어야 돌연변이 독 없는 아몬드를 찾을 수 있는 걸까? 그리고 걔들이 그걸 왜 먹어;; 지금 현재 남아 있는 채집민을 보아도 알겠지만, 그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아주 명료하게 구분하며, 독이 있다 싶으면 건드리지도 않는다. 
 
 그 후로 그는 이 ‘돌연변이’론이 마음에 들었던지 계-속 밀고 나간다. 하지만 죄다 헛소리이며, 근거라곤 전혀 없는 순수한 가설, 그것도 바보 같은 가설들이다. 
 
 이 아몬드에 대한 헛소리는 194p에서 절정이다. 
 마지막으로, 아마 아몬드와 도토리의 (도토리는 작물화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몬드에서는 단 하나의 우성 유전자가 쓴맛을 조절하지만, 떡갈나무에는 쓴맛을 조절하는 유전자가 여러개인 듯 하다. 가령 고대 농경민이 어쩌다가 발견한 쓴맛이 없는 돌ㅇㄴ변이 나무의 아몬드나 도토리를 땅에 심었을 때, 유전학 법칙에 따라 아몬드의 경우에는 거기서 자라난 나무 열매가 쓴맛이 없겠지만 떡갈나무의 도토리는 계손 쓴맛이 난다. 설령 어느 농경민이 도토리를 재배하겠다고 나서서 다람쥐를 물리치고 끈기 있게 버티었더라도 이 문제에만 부딪히면 그만 열정이 식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녀석은 바보다. 
 
 이녀석이 이렇게 바보 같은 말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농경의 시작이 ‘무의식적’이라는 주장을 계속 하고 싶어서인 것 같다. 
 
 고대 등산객들이 먹을 수 있는 야생 식물을 선택할 때 그 기준이 의식적이었든 무의식적이었든 아무튼 그 선택의 결과로 야생 식물이 농작물로 진화하게 된 과정은 처음에는 무의식적인 과정이었다.  -195
 
 이게 무슨 소린지 아는 사람은 내게 연락해주기 바란다. 고대인이 야생식물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여도 그게 농작물로 진화하게 된 것은 무의식적이었다는 이야긴데, 내 어리석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 8장 작물화하는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이번 장은 작물에 대한 이야기다. 주장은 단 하나, ‘유라시아가 그 어떤 지역보다도 농작물을 키우기 좋았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은 상당한 억측과 가설 위에 서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나오는 헛소리를 우선 살펴보면, 
 현대세계에서 모든 농작물을 통틀어 연평균 총 생산량의 80%를 책임지고 있는 농작물은 겨우 12종에 불과하다. 그 12종 중에서 곡물로는 밀, 옥수수, 벼, 보리, 수수, 콩류로는 메주콩, 뿌리 또는 덩이줄기 작물로는 감자, 마니오크, 고구마, 설탕 공금원으로는 사탕수수와 사탕무, 과일로는 바나나가 있다. 이 중에서 곡류만 따지더라도 전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총열량의 절반을 넘는다. 
 세계적으로 주요 농작물이 그렇게 소수에 불과하고 그 모두가 수천년 전에 이미 작물화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의 많은 지역에 탁월한 가능성을 가진 토종 야생 식물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현대에 와서도 새로 작물화된 주요 식량 식물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보아도 유용한 야생 식물은 이미 고대인들이 거의 빠짐없이 살펴보았고 그 중에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모조리 작물화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99
 
 이 논리를 요약해보자. 
 
 주장: 작물화 할 만한 가능성이 있는 주요 식물은 고대인이 모두 빠짐없이 작물화 했고, 그 숫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근거: 왜냐하면, 현대 열량의 대부분은 고작 12종의 농작물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다. 이 사이에 현대에 와서 새로 작물화된 식량이 없다는 등의 문장이 들어가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저 주장을 강화시켜주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다. 현대에 작물이 12종인걸 보니 고대의 작물들도 소수였을거라는 주장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는 이런 말을 태연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메소포타미아를 최초의 식량생산지라고 말하고 논지를 전개한다. (202p) 사실 그로서는 그래야만 했다. 유럽은 도대체가 농업을 빨리 시작했다고 할 수가 없으니, 바로 근처의 메소포타미아를 끌어 들여야 한다. 이 부분 말고도 수 없이 다른 부분에서 그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지중해 유럽은 단일 역사권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둘이 단일 역사권이라는 주장은 몇십년 전에 나온 유럽중심주의적 낡은 주장이다. 
 여하간 메소포타미아가 최초의 농경민족이라는 근거는 사실 현재까지는 거의 없거나, 있는 것도 매우 불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농경과 곡물 유적이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오래 남는 증거들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것조차도 지역편차가 너무 심하게 연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현재 메소포타미아는 기원전 8500년으로 잡고 있다. 그러나 뉴기니는 기원전 7500년, 중국은 최소 기원전 7000년에서 최대 11000년으로 잡고 있다. 그리고 연구가 진행될수록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사실 아프리카같은 경우는 아예 연구도 미흡한 실정이다. 
 
 좋다, 이런 불확실성을 제외하고 메소포타미아가 최초의 식량생산지라고 친다 하더라도, 그 후 그가 주장하는 ‘다른 식물보다 유라시아(사실 이 단어를 쓸 필요도 없다. 그는 중국도, 유럽도 말하지 않고 오직 중동에 대해서만 말한다)에서 작물이 잘 자랄 수 있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든다.
 
 1. 지중해성 기후다
 2. 알이 큰 볏과 생물 종이 가장 많았다.
  2-1 뿌리식물은 단백질이 별로 없다. 

 이것인데, 이곳에 숨어 있는 전제들은 사실 동의하기 무척 어려운 것이다. 그 전제들이란, 1. 지중해성 기후가 볏과 식물에게 좋다. 2. 볏과 식물은 뿌리 식물보다 더 좋다.  라는 전제다. 하지만 이 두 전제 모두 틀렸다. 왜냐하면 그 볏과 식물들은 지중해성 기후가 아니라 상당수 많은 기후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사실은 지중해성 기후보다도 물이 많은 열대성 기후에서 더 많은 수확량이 존재한다. 또한, 알이 무거운 종류를 고르고 있는데, 사실 그것은 벼의 수확량과 같은 말이 아니다. 또한 기장의 여러 변종들을 비롯한 상당수 잔알 곡물들은 또 다른 기후를 가진 또 다른 지역들에서 주곡노릇을 한다. 사실 다이아몬드가 지중해성 기후를 강조하는 이유는 목적론적 냄새가 풍기는데, 지중해성 기후가 곡물에 좋다면 자연히 그 곡물들은 지중해쪽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는 뿌리식물(얌, 감자, 타로감자, 카바사, 고구마)보다 곡류가 좋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곡류 중에서도 유라시아에서 작물화된 작물(근동의 밀, 중국의 기장)이 다른 작물보다 더 좋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내놓은 것은 설득력 없는 낡은 논지, ‘단백질 함량이 적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옛날에 폐기된 주장이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곡물 하나만 먹지 않기 때문이다. 덩이뿌리, 줄기 작물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밀이 8-14%의 단백질 함량을 가졌다고 하지만, 사실 쌀은 7%의 단백질 함량을 가진다. 또한 그 차이래봐야 수분함량의 차이일 뿐이다. 게다가 뿌리작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얌이나 타로토란을 먹는 문명권은 보통 다른 음식들로 단백질을 섭취한다. 
 
 즉, 그는 ‘유망한 작물’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지만 그 설명 이면에는 지중해성 기후와 볏과 식물을 우위로 두는 전제가 숨어 있다. 그러나 둘 다 진실이라고 보기에는 곤란한 명제들이다. 

 
 제 9장 선택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여기서도 비슷한 논지가 반복된다. 하지만 잠깐만 지적하고 빨리 넘어가자, 우리에게는 10장에서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이고 터무니없는 헛소리와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성공적으로 가축화된 동물들은 거의 오로지 유라시아 종들 뿐이었다.’ 라고 말했다. 하지만 메소포타미아와 이웃한 북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 두 지역에서 양, 염소, 말, 낙타, 소의 한 종이 가축화 된 것은 확실 하지만, 인도 또한 소의 또 다른 종(보스 인디쿠스)을 가축화 하였고,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는 물소와 돼지, 남아메리카에서는 야마와 알파카가 가축화 되었거니와, 사하라 사막과 수단을 아우르는 지역은 서기 칠천년 전 쯤엔 지금 보다 비가 더 많이 내렸고, 이미 그때 소를 몰고 있었으며, 가장 최초로 가축화 된 곳이었다. 
 
 그는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제 10장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드디어 나왔다. 헛소리의 백미. 제 10장이다. 
 
 지금까지 다이아몬드가 한 모든 말이 죄다 옳다고 하자! 하지만 그래도 그것은 결코 유럽의 우위를 정당화 할 수 없다. 고작 해봐야 “메소포타미아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식량을 생산한 이유” 정도가 될까? 당연히 유럽은 기원전 8000년 전쯤에 나무에서 살았거나, 혹은 동굴에서 살았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유럽은 메소포타미아의 문물들을 흡수했다! 라는 것이 필요하다. 자, 이제 다이아몬드가 건드리는 것은 ‘전파’다. 
 
 그는 ‘축’으로 세계를 나눈다. 유라시아는 좌우로 길쭉(동서 축)하고,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는 위 아래로 길쭉(남북 축)하다는 것이다.
 
 축의 방향은 농작물과 가축은 물론이고 어쩌면 문자와 바퀴 등 발명품들의 전파 속도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260p
 
 그리고 쭉 전개하는 논지는 간단하다. 문물들은 좌우로는 잘 전파되고, 상하로는 더디게 전파된다는 것이다. 왜?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같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는 좀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우량의 추이, 생식지나 생물 군계등도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 남부, 이란 북부, 일본등은 모두 위도상의 위치가 같지만 (...) 기후가 비슷하다. (..._식물의 발아, 성장, 질병에 대한 저항력등은 바로 기후의 그 같은 특성들에 적응하고 있다. -270~271p
 
 내 살다 살다 이런 헛소리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 아, 물론 이 이야기 하기 전에 남아메리카의 옥수수와 라마가 천천히 전파되었고, 유라시아의 작물은 좌우로 무척 빨리 전파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것들은 정말로 고고학적으로 불확실한 근거이며, 도대체가 설사 선사시대에 그렇게 더디게 전파되었다고 하더라도 문명이 들어선 후 전파 속도가 선사시대 전파 속도가 관계가 있을까? 
 
 자자, 하여튼 그래도 우선 같은 위도상에는 대충 비슷한 기후다- 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생각해보자. 그는 지리와 기후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거나, 혹은 모른 척 한 것 같다. 
 당장 지도를 펼쳐보고 그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메소포타미아지대의 위도에 대체 뭣들이 있는지 살펴보라. 그는 이곳을 그냥 ‘온대’라고 치부했다. 그리고 위에서 예로 든 이탈리아 남부와 이란 북부 위도는 그가 계속 말했던 메소포타미아의 위도보다 한참 위에 있다. 심지어 그 위도상에도 테클라마한 사막과 쿤룬 산맥이 있다. 그리고 광활한 스텝이 있고, 이곳들은 모두 지중해성 온대와는 아주 거리가 먼 기후들이다. 자, 그리고 그가 말한 농작물이나 가축이 기후가 비슷해서 전파되기 좋았다는 메소포타미아 위도를 살펴보면, 아무리 눈이 나쁜 사람이라도 그 라인에 사막, 열대 인도, 히말라야 산맥등이 펼쳐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가 아메리카 동식물들이 남북으로 퍼지기 힘든 자연적 장애물로 지적한 멕시칸 북부 사막과 파나마보다 훨씬 더 거칠고 난폭한 자연들이다. 
 
 어떻게 상식 가진 사람이 위도가 비슷하면 기후도 비슷하단 말을 내뱉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좌우로 퍼지기 쉽다는 말이 거짓인 마당에, 그렇다면 상하로 퍼지기 쉬운 이유는 진실일까? 그는 기후가 달라지면 식물종이 번식하기 힘들다는 논지로 경도를 따른 확산이 매우 더디다고 주장했다. 이 이야기 역시 헛소리인데, 왜냐하면
 1. 자연적으로 하나의 식물종은 상당히 다양한 기후에 적응하고 자생한다. 온대 유라시아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사실 어느 열대지역이나 자랄 수 있고,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다 하여도 실제로 자란다. 
 2. 인간들은 종자들을 작물하면서 기후에 맞추어 적응 시킨다. 식물의 적응력은 더욱 높아진다. 

 그는 이렇듯 작물이 좌우로 전파가 빠르고, 상하로는 느리다는 틀린 주장을 한다. 
 
 게다가 그가 그렇게나 힘들었다고 말하는 아메리카의 남북 전파는 상당히 잘 되고 있었다. 그가 그렇게 경시하는 옥수수에 대한 자료는 그냥 완전히 틀린 것으로서, 그것은 남북 아메리카 두 대륙을 오갔다. 그리고 파나마 지협의 폭 역시 바닷길이 존재했고, 마치 사하라 사막급으로 묘사한 멕시코 북부 사막은 사바나 지역이며 우리가 상상하는 모래 가득한 사막 부분은 극히 조금이다.   
 여기에서 그는 또 과감한 주장을 한다. 

 각 대륙에 따라 달랐던 축의 방향은 식량생산의 확산 뿐만 아니라 기타 기술이나 발명품의 확산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삼천년 경에 서남아시아 부근에서 발명된 바퀴는 동서로 신속하게 전파되어 불과 수세기 동안 유라시아의 많은 지역으로 퍼졌다. 반면 선사시대에 멕시코에서 독립적으로 발명되었던 바퀴는 안데스까지 남하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기원전 1500년 경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서부에서 개발된 알파벳의 원리도 약 천년동안 서쪽으로는 카르타고까지, 동쪽으로는 인도 아대륙까지 전파되었지만 선사 시대에 중앙 아메리카에서 꽃을 피웠던 문자 체계들은 그로부터 적어도 2000년 동안 안데스 일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280p
 그는 멕시코에서 발명되었던 바퀴가 잉카에 전파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지, 평원인 멕시코에 비해 해발 4000미터 이상으로 된 고지 잉카에 바퀴가 그다지 필요 없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그는 아무 설명도 없이 은근슬쩍 농작물의 확산에 ‘문화’ 도 집어넣는다. 이것은 아주 심각한 오류다. 일정 문명들이 발달하게 되면 전파 속도는 자연을 극복하며 전파된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전파에 ‘문화’가 끼친 영향을 말하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 전파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위도 상에는 기후가 비슷하며, 좌우로는 남북만큼 장애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두 근거 모두 완전히 틀렸다. 물론 유럽-중동-중국을 잇는 좌우 문화 전파가 남북보다 활성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자연‘덕분’이 아니라, 거친 ‘자연에도 불구하고’ 실크로드를 뚫었던 중국과 아랍의 공로였다. 
 그리고 아무리 뒤져봐도 그는 농작물의 전파가 좌우로 쉽고 남북으로 어렵다는 주장에 대한 (틀린) 근거를 내놓을 뿐, 문화 전파 역시 좌우로 쉽고 남북으로 어렵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는 전혀 없다. 내가 가장 역겨워하는 부분인데, 그는 선사시대 근거를 들고 나서 마지막에 와서는 아무 상관없는 현대의 이야기를 살짝 더하는 것이다. 
 이 현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해보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농작물이 처음 경작 된 것이 그의 말대로 기원전 8000년 전 쯤이라고 가정 하자. 그곳에서는 기원전 6000년 전부터 금속을 쓰기 시작했고, 철기는 신히타이트 제국때부터 사용했다. 이 시기는 기원전 1100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이아몬드의 축 이론은 농작물의 전파가 위도를 따라 더 빨리 전파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유럽은 메소포타미아의 오래도록 발전된 문물을 전파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원전 8000년 경, 유럽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작물들은 전파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사람들이 농사를 지었는가? 그들이 말하는 ‘그리스 문명’은 기원전 7세기였다. 그때는 익히 알고 있었겠지만 이미 이란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누군가 유럽의 문명발달이 ‘전파’덕분이라고 말하고 싶다면, 위도 때문이 아니라 전쟁, 즉 문화적 요인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스가 세워질 쯤, 이미 인간들은 상당한 경도 차이를 극복할 수 있게 작물들을 개량하는 경지에 이르렀으며, 어지간한 산맥, 바다, 사막 따위 건너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나는 유럽의 기술이 발달한 것이 전파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분명 아랍의 수없이 발전된 기술을 받아들였고, 그 기술들을 더 발전시키기도 하였다. 내가 반박하는 것은 그게 환경 때문이라는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심지어 위도가 같고, ‘별 장애물이 없어서’ 라는 꼴같잖은 주장에 반대한다. 

 
 11장 세균

 이 장은 딱히 별로 할 말이 없다. 죄다 이상한 주장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유럽의 세균들이 다른 민족들을 죽인 이야기를 아주 많이 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물론 거의 대부분 사실이다. 다만 문제가 몇 개 있다. 
 
 1. 유럽인들도 신대륙에 가서 괴질로 무척이나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2. 치명적인 세균들은 모두 가축에서 진화한 것이기 때문에 농경민의 특권(?)이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그는 세균을 통해 공격도 농경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친다면 아메리카 역시 야마와 얄파카가 가축화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 역시 또 다른 종류의 세균을 보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상황에서 유럽의 세균이 그들이 키운 가축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은 아주 이상하다. 이에 대하여 그는 311p에서 설명하는데,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혀 설득력 없는 주장이다.  
 3. 유럽인은 전혀 가축을 키우지 않는 아프리카등 지역에 들어가서 무척 많이 죽어댔다. 
 
 즉, 세균이라는 것은 문명마다 다르며, 심지어는 농경민의 특권같은 것도 아니다. 
 

 12장 문자

 이 장은 참 무용한 장이다. 
 
 농경민이 문자를 사용했다는 것은 무척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문자 발명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을 무척 많이 하지만, 그게 이 책에서 다룰 필요가 있는지도 아주 의심스럽다. 그는 수메르 문자가 비음성적인 어표들로 구성되어 있느니, 그것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이야기 하지만, 사실 없어도 되는 내용들이다. 

 다만 그런 와중에서도 아주 불쾌한 논지들이 많이 보인다. 
 이 로마 알파벳은 약간의 수정을 거친 후 바로 지금 우리가 쓰는 알파벳이 되었다. 알파벳은 정확성과 간소함을 겸비했다는 잠재적 이점 때문에 오늘날 현대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채택하고 있는 문자 체계다. -331p
 
 이 주장은 그 자체로도 헛소리지만, 내가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의 논리전개 방식이다. 위의 문장이 결론으로 나와있다면, 그 저자는 그 위에 무슨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가? 당연히 다른 언어들과 알파벳을 비교하면서 그 정확성과 간소함 등을 장점을 이야기해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329, 330페이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다이아몬드는 그냥 알파벳의 역사에 대해 쭉 설명할 뿐이다. 알파벳이 편해서 세계에서 많이 쓰인다는 주장과는 아무 상관없는 글들이 나열되다가, 갑자기 결론에서 저것이 튀어나온 것이다. 선사시대 작물의 전파가 이렇다느니 저렇다느니 지껄이다가 갑자기 ‘……그래서 문화 전파도 비슷함.’ 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책은 큰 골격조차 이딴 식으로 되어 있다. 
 
 게다가 그가 자기네 언어 말고 다른 언어를 바라보는 시점 역시 아주 문제가 많다. 
 미케네 문명 시대 그리스의 문자였던 선문자B는 그보다 더 단순한 형태로, 90개 가량의 기호로 이루어진 음절 문자와 어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선문자B의 이 같은 장점은 심한 모호함 때문에 상쇄되고 말았다. 이 문자는 낱말 끝에 오는 자음을 모두 생략했고 몇 개의 관련된 자음을 한 개의 기호로 나타냈던 것이다. (예를 들자면 I 와 r, p 와 ‘b’ ‘ph’, g 와 k 등을 한 개의 기호로 표시하는 식으로) -340
 
 그는 초기문자의 한계로 두가지를 지적했다. 1. 심한 모호함, 2. 엘리트만 사용한 문자. 그리고 그 심한 모호함의 예시로 든 것이 바로 저 선문자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읽어보면 어째서 저것이 심한 모호함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엘과 알을 한 개의 기호로 표시한다는 것은 한글도 마찬가지다. 우린 그것을 모두 ‘리을’로 표기한다. 묻고 싶다. 대체 모호함, 그것도 ‘심한 모호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문자대로 발음되지도 않는 영어 알파벳은 모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는 단순히 자기에게 낯설면 ‘모호함’이며, 그것은 그 문자가 가지고 있는 ‘한계’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또 지적하는 ‘문자가 엘리트만 사용했다’라는 지적에 대한 근거들을 살펴보면 더더욱 기가 막힌다. 수메르 문헌들은 모두 궁전이나 사원관료들의 기록이며, 중국인의 최초 글자는 갑골에 새겨져 있으므로 엘리트만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조금 기가 막힌 논증인데, 우선 자료로 남은 것이 그것일 가능성도 있고, 두 번째로 문자는 원래 엘리트들이 썼다. 그러나 그는 ‘초기 문자’가 아닌 그리스 문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처음부터 시와 유머의 전달 수단이었으며 각 가정에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342) 그런데 그 근거라는 것이 아주 웃기다. 술 항아리에 시 한줄이 쓰였고, 술잔에 시가 새겨져 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것으로 그는 ‘그리스 문자는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모두가 읽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반박하기도 귀찮은 주장이다. 게다가 그가 ‘초기 문자’ 라고 하는 한자는 그리스 문자가 생겼을 당시 춘추전국시대로서 제자백가 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는 전혀 시대를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담처럼 말하는데, 그는 그리스 문자가 페니키아의 자음 알파벳을 빌려오고 그리스인들이 모음을 발명하여 더욱 향상시킨 알파벳(342)이라고 하는데, 거짓이다. 
 

 13장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이 장 역시 거의 순수한 헛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는 여기에서 발명은 개인이 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은 사회이다- 라는 논지를 전개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선사시대에 대한 이야기에서 갑자기 축음기와 자동차를 예시 든다. 읽다 보면 조금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뭐 그래도 받아들여보고 읽다 보면, 그가 계속 ‘기술의 수용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한 사회가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내세운다. 
 1. 기존의 기술과 비교되는 경제적 이점
 2. 사회적 가치관과 위신의 문제. (일본은 능률적인 알파벳이나 일본의 가나 문자보다도 무지막지하게 성가힌 한자를 선호하며 계속 사용하는데, 이것은 한자라는 문자에 부여된 위신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3. 기득권과의 양립 가능성이다. 
 
 아. 무지막지하게 성가신 한자 라는 표현은 내가 쓴게 아니다. 360p에 쓰인거다. 여하간 이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비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그는 이제까지 환경만 연호하다가, 제 편할대로 사회적 위신이니 뭐니 하는 전혀 감잡을 수 없는 개념을 마구 끌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후에 그는 당연하게도 기술혁신의 수용성이 차이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무려 다섯페이지 남짓 그는 쓸데없는 말을 하더니, 전파에는 평화적 교역, 첩보 활동, 이민자, 전쟁등을 372p에서 꼽는다. 그리고 다음페이지에서 ‘지리와 확산이 기술의 역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역할’을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이녀석은 그 후에 갑자기 일본이 총을 포기한 이유가 위신적인 문제라고 하더니, 다음에는 농경문화는 기술을 발달시키는 원인이라고 하더니, 그냥 그렇게 말하다가 자기가 앞에서 제시한 정말 중요한 질문들은 거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끝내버린다. 중언부언한 헛소리라는 것이다. 
 
 일본이 총을 거부하고 중국이 해양선박을 포기했던 일은, 고립 또는 반고립 상태인 사회의 기술 퇴행 현상을 보여주는 유명한 역사적 사례다 –375
 
 그는 일본이 총을 거부한 것을 이렇게 결론내리고 있지만, 사실 그 전까지 그가 한 말을 들어보면 대체 일본이 총을 포기한 이유로 지리적 요인은 단 하나도 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위신을 문제 삼았다. 그는 유럽은 총을 포기하지 못한 이유로 주변에 적국들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안한 말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일본은 섬나라라서 총을 선택 안했다는 건데, 그러면 대체 영국은 어쩌란 말인가.
 하아, 그 후로 나오는 말들도 다 헛소리지만 일일이 지적하기에는 이제 지쳐간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 

 14장. 평등주의부터 도둑정치까지.
 여기서 그는 농경부족이 점차적으로 어떤 정치적 과정을 겪는가 설명한다. 그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 439p 에 가서야 말하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중앙집권정치 체제를 가진 사회는 추장사회를 잘 이긴다. 라는 내용이다. 
 
 ...난 사실 지금 이걸 다시 읽어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장인지 알 수 없다. 아는 분은 좀 말해주기 바란다. 이 장이 ‘유럽이 총을 가진 이유’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말이다.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농경사회는 비농경사회를 이기고 점령한다.’ 정도로만 읽힌다. 이 장 대체 왜 쓴거지?
 15, 16, 17, 18, 19장은 그냥 다 쓸데가 없다. 
 하나하나 내용 역시 헛소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에필로그 전까지 그저 ‘유라시아가 농경이 제일 일렀다’ 정도에서 머물며, 다이아몬드가 말해야할 질문과 거의 아무런 상관없는 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변호하고 싶으시다면 개인적으로 연락 바란다.

 
 20. 에필로그
 에필로그까지 왔지만, 여전히 그는 유럽이 승리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여기서 책이 끝났다면 이 책은 ‘유럽중심주의’가 아니라 ‘유라시아 중심주의’ 라는 비판을 받으면 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 책을 시작한 목적이 왜 유럽이 세계를 지배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피해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질문, 사실 이것은 제 1장부터 계속 다루어졌어야 하는 대답인데, 그는 에필로그까지 침묵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로 페이지를 채웠다. 그는 유라시아의 중요한 두 문명, 메소포타미아와 중국이 왜 세계를 지배하지 않았고 하필 가장 늦게 발달한 유럽이었는가에 대해 아주 짧고, 아주 터무니 없이 대답한다. 
 
 질문: 메소포타미아에서 부흥한 문명은 왜 몰락했는가? 
 대답: 그 부분이 사막이 돼서. (600p)
 지도를 다시 보라고 묻고 싶다.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아직도 비옥하다. 네푸드 사막과 룹알할리 사막은 그 아래다. 203p로 돌아가서 그가 스스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표시한 부분이 현재 어떠한지 알아보고, 그가 태연하게 ‘이제는 사막이 되었다’라고 한 바로 그 사막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라. 헛소리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지역은 현재 시리아 북부, 터키 동부, 이라크 북부, 이란 동부다. 모두 아직도 괜찮은 땅이다. 
 
 질문: 중국은 왜 유럽에게 기술력에서 뒤쳐졌을까?
 대답: 해안선이 단순하고, 중국에 지리적 장애물이 없어서.
 
 이게 어떻게 헛소리인지는 처음 시작할 때 지겹게 말했다. 정말 퓰리처상을 받은 놈이 이런 멍청한 말을 지껄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605p를 보면 정말 그렇게 적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임재영(글라인) 님의 글로 이 글에 대한 반박이나 의견은 홈피(http://rmffkdls.com) 이메일(epalflcl@naver.com) 블로그( http://m.blog.naver.com/epalflcl)에서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쥔장께서 명확히 그 반박과 의견에 답해 주실 것입니다. 이 분은 언제나 건전한 논쟁은 환영하니까요.
 

2014년 11월 11일 화요일

세계화와 변화하는 자본주의, 황준성 , 강달원

세계화와 변화하는 자본주의 


황준성 , 강달원 지음 | 시그마프레스 | 2011년 06월 15일 출간

책소개

『세계화와 변화하는 자본주의』는 세계화 속에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자본주의시스템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하여 왔는지 알아보는 책이다. 매 장마다 ‘학습목표’와 ‘학습내용’을 제시하였고, 주요한 경제용어들에 대해서 해설을 덧붙여 경제용어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했다.

저자소개

저자 : 황준성

저자 황준성(黃俊性)은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Freie University Berlin) 대학원 경제학 박사.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한독경상학회 회장 역임, 통일원 정책자문위원,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Albert-Ludwigs-University Freiburg) 초빙교수, 풀브라이트 교환교수. 현재 숭실대학교 경제통상대학 경제학과 교수

저자 : 강달원

저자 강달원(姜達遠)은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숭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관동대학교 겸임교수, 인천발전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역임, 현재 숭실대학교 경제통상대학 경제학과 조교수

목차

제1장 경제와 경제시스템 1
제2장 세계화의 특징과 자본주의 29
제3장 경제체제와 거시경제적 성과 비교 I 71
제4장 경제체제와 거시경제적 성과 비교 II 101
제5장 자본주의의 역사 125
제6장 시장과 정부 145
제7장 자본주의의 네 가지 모델 167
제8장 글로벌 금융위기와 자본주의 197
제9장 영국 시장경제 231
제10장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253
제11장 일본의 관료자본주의:일본의 ‘잃어버린 10년’ 281
제12장 스웨덴 시장경제 305
제13장 창조적 자본주의 341
제14장 바람직한 한국경제 시스템 361

출판사 서평

이 책은 세계화 속에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약 250여 년 역사의 자본주의가 그 발전과정 속에서 어떠한 특징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본주의의 각 발전 단계마다 어떤 유형의 자본주의가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고, 각 유형별 자본주의의 특징은 무엇이며, 각각의 유형에 따라 경제적 성과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21세기 바람직한 한국의 자본주의 모델을 정립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