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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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chinahistorio.com/bbs/board.php?bo_table=history01&wr_id=10 명청사학에 관한 개설서와 연구서의 목차를 일부 정리한 것입니다. 명청사학연구논저목차 * 탁용국(卓用國), 중국사학사대요, 탐구당, 1986 제9장 명대의 사학 1. 원사(元史)의 편찬 2. 대규모의 편찬 3. 장고(掌故)의 학(學) 4. 이지(李贄)의 사론(史論) 5. 양신(楊愼)의 학문 6. 초횡(焦竑)의 목록학 7. 금석서(金石書) 제10장 청대의 사학 1. 명사의 편찬 2. 황종희(黃宗羲)와 절동학파(浙東學派)의 사학 3. 고염무(顧炎武)와 서건(徐乾)학계의 사학 4. 왕부지(王夫之)와 호승락(胡承諾)의 학문 5. 수보(修補)구사(舊史)의 사학 6. 고정(考訂)구사(舊史)의 사학 7. 고사(古史)연구 8. 금석학(金石學) 9. 교감학(校勘學) 제11장 양계초(梁啓超)의 사학 및 근대(近代) 발견한 신사료(新史料) 1. 양계초의 사학 2. 근대 발견한 신사료 (1) 은허 갑골문자의 발견 (2) 고대 금석과 도기의 출토 (3) 만문노당(滿文老檔) (4) 내각당안(內閣檔案) (5) 돈황학(敦煌學) * 신승하, 중국사학사, 고려대출판부, 2000 제9장 명대의 사학 1. 명대 사회와 사학 2. 사관(史館)제도와 실록의 편찬 3. 원사의 편찬 4. 명대 후기 개인의 사서 편찬 5. 영락대전(永樂大典)과 명회전(明會典)의 편찬 6. 왕세정(王世貞)과 이지(李贄)의 사학 7. 방지(方志)와 경제사 8. 민간사학의 잡사(雜史), 필기(筆記), 소설(小說) 9. 농업, 약학, 기술서의 편찬 제10장 청대의 사학 1. 청초 사학의 신기운과 좌초 2. 고염무의 사학 - 일지록(日知錄) 3. 왕부지의 사학 - 독통감론(讀通鑑論) 4. 황종희의 사학과 절동사학파 5. 장학성의 사학 - 문사통의 6. 건가시대의 역사고증학 7. 최술(崔述)의 고신록(考信錄) 8. 명사의 편찬 9. 고금도서집성과 사고전서의 편찬 제11장 근대 중국의 사학 1. 금문경학의 대두와 상주학파(常州學派) 2. 공자진(龔自珍)의 사학 3. 위원(魏源)의 사학 4. 변방지역의 역사와 지리연구 5. 중국인의 외국역사 소개 6. 선교사에 의한 외국사의 번역과 소개 7. 당대사의 저술 : 아편전쟁과 태평천국 8. 전통사학에 대한 비판과 역사진화론, 구사학과 신사학의 과도기 엄복(嚴復)과 강유위 * 이계명, 中國史學史綱要, 전남대학교출판부, 2003 제1부. 중국 전통사학의 성립과 발전 제5편 명청시대의 사학의 발전 제1장 명대 사학 제1절 명대사학 개괄 제2절 李贄의 藏書 제3절 元史의 편찬 제2장 명청 교체기의 사학 제1절 근세 사학의 중흥시기 제2절 황종희와 절동사학 제3절 顧炎武 및 그의 日知錄 제4절 王夫之 및 그의 역사평론 제3장 청대 사학 제1절 청의 文化專制 제2절 明史의 편찬 제3절 乾嘉시기 역사고증학의 종합적 서술 제4절 건가시기의 사학 고증의 3부 명저 제5절 장학성의 文史通義 제2부 중국근현대 사학사조와 그 유파 제1장 근현대 사학의 개괄 제1절 근대사회 대변동과 사학 제2절 근대사학발전의 과정과 특징 제3절 근대사학사조와 유파 제2장 아편전쟁시기의 경세치용 사학사조 제1절 西北史地學의 흥기 제2절 세계를 보는 外國史地의 탐구 제3절 휘황한 當代史 저술 제3장 洋務思潮 영향에서의 사학 제1절 양무사조와 사학 제2절 中興史와 外交史의 편찬 제3절 부국강병의 科技史와 軍事史書의 탐구 제4절 세계로 향하는 外國史의 고찰 제5절 光緖朝 시대의 元史學 제6절 宣敎師의 史書 편역과 그 영향 제4장 20세기 초의 신사학 사조 제1절 서방사학의 수입과 중국사학의 근대화 제2절 신사학 사조와 자산계급 사학의 확립 제3절 신사학의 창시자 양계초 제4절 자산계급의 외국사연구 제5절 신식 역사교학과 교과서의 편찬 제5장 신해혁명시기의 국수주의 사학사조 제1절 국수사학의 형성 제2절 국수파의 역사방법과 학술성취 제3절 국수파의 민족문화론 및 그 한계 제4절 국수사학의 巨擘 章太炎 제6장 5․4시기의 사학사조와 유파 제1절 자산계급 사학발전의 새로운 추세 제2절 반봉건의 의고사학 제3절 고고파 사학의 계기 제4절 실용주의 사학의 流轉과 演化 제5절 문화사연구의 흥기와 통속사학 제7장 중국의 마르크스주의 사학 제1절 유물사관의 중국진출 제2절 중국 마르크스주의 사학의 출현 제3절 중국 마르크스사학의 건립과 발전 * 劉節/辛太甲, 중국사학사강의, 신서원, 2000 제15장 요, 금, 원, 명 사학개관 1. 사관제도와 실록의 편찬과정 2. 관찬사서의 편찬과정 3. 사찬사서의 편찬과정 4. 명대의 국사와 야사 5. 경세대전과 명회전 제16장 왕부지의 사론 1. 약전과 저작 2. 철학체계 3 인류사회의 발전관 4. 반전통적 관점 5. 역사가의 진퇴와 역사서술의 의의 제17장 명사의 편찬과정 1. 명실록 및 기타 사료의 편면성 2. 명사편찬의 세 시기 3. 현존하는 명사의 원고본 4. 명사의 평론 5. 청대 사람들이 편찬한 명대편년사 및 기타 명대와 관련이 있는 사서 6. 명사와 청대의 사옥(史獄) 제18장 청대의 사학개관 1. 사관제도 2. 청사고의 편찬과정 3. 구사(舊史)의 개정 4. 구사(舊史)의 재집록 5. 구사(舊史)의 교정과 주석 6. 새로운 사체(史體)와 사서 7. 역사지리학 및 연력학(年曆學) 8. 고기물학(古器物學)과 고명지학(古銘志學) 9. 절동사학(浙東史學) 및 그 연원 10. 고사학(古史學)과 의고학파(疑古學派) 제19장 장학성의 사학 1. 약전 2. 사상체계 3. 사학이론 4. 사체(史體)의 연혁과 사가의 비판 5. 방지학(方志學)과 교수학(校讎學) 6. 사적고(史籍考) * 高國抗/오상훈외, 중국사학사 하, 풀빛, 1998 제5편 근세 사학의 발전 제1장 명대사학의 개괄 제2장 명․청교체기의 사학 1. 근세 사학의 중흥시기 2. 황종희와 절동사학 3. 고염무 및 그의 일지록 4. 왕부지 및 그의 역사평론 제3장 청대사학 1. 청의 문화 전제(專制) 및 명사의 편찬 2. 건가(乾嘉) 역사고증학의 종합적 서술 3. 건가 시기 사학 고증의 3부 명저 4. 장학성 및 그의 문사통의 * 宋衍申 主編, 中國史學史綱要, 東北師大출판사, 2001 제6장 봉건사학의 衰微 1. 명조의 사회와 사학개관 2. 명조의 官修사서 (1) 史館제도 (2) 원사의 編修 (3) 「명회전 (4) 永樂大典 3. 명조 후기의 私撰史 (1) 雜史와 필기의 번성 (2) 王世貞의 사학 (3) 李贄의 사론 (4) 柯維驥, 陳邦瞻, 焦竑, 王圻, 胡應麟, 錢謙益 등의 사학성취 제7장 봉건사학의 종결 1. 고염무, 황종희, 왕부지의 사학 2. 청조의 官修諸史 (1) 명사의 편찬 (2) 官修國史 (3) “六通”과 會典 (4) 고금도서집성과 사고전서 (5) 方略 3. 乾嘉史學 (1) 건가사학의 형성 (2) 왕명성과 십칠사상각 (3) 조익과 이십이사찰기 (4) 전대흔과 이십이사고이 (5) 方志와 보첩의 발전 (6) 舊史의 改寫, 補作과 考證 (7) 校注, 辨僞와 輯佚 4. 장학성과 문사통의 제8장 救亡圖變의 淸朝후기 사학 1. 經世致用사학의 새로운 기풍의 重開 (1) 龔自珍의 사학사상 (2) 魏源의 역사저작 (3) 徐繼畬, 姚瑩의 저술 2. 邊疆史地와 元史學의 연구 (1) 祁韻, 徐松, 兪正燮, 沈규의 史地저술 (2) 張澍, 張穆, 河秋濤, 丁謙의 史地연구 (3) 洪鈞, 屠寄, 柯劭忞의 元史學 3. 外國史의 소개와 연구 (1) 王韜의 외국사 저술 (2) 黃遵憲과 그의 日本國志 (3) 唐才常의 외국사 소개와 연구 4. 청조 후기의 “當代史”저술과 明史연구 (1) 청조 후기의 “當代史”저술의 특색 (2) 夏燮의 사학 성취 (3) 徐鼐, 陳鶴의 明史연구 5. 자산계급 사학의 産生 (1) 嚴復의 西學譯著 (2) 양계초의 봉건사학 비판 (3) 夏曾佑, 柳詒徵, 劉師培의 역사교과서 (4) 章太炎의 사학사상 * 尹達, 中國史學發展史, 中州古籍出版社, 1985 제4編 封建社會의 사학(下) 제1장 明淸之際 역사사상의 진보성 1. 李贄의 反理學的 역사사상 2. 황종희, 왕부지, 고염무 治史의 “경세치용” 3. 황종희, 왕부지, 고염무 사학사상의 반전제주의 경향 제2장 淸朝의 修史에 대한 엄격한 통제 1. 淸初 史館의 개설과 私史안건 2. 명사의 찬수와 그 특징 3. 청조의 실록과 官修諸史 제3장 專史의 발달 1. 明儒學案과 학술사의 흥기 2. 讀史方輿紀要와 역사지리학의 성취 3. 方志 편찬의 유행과 성적 4. 舊史의 편찬과 검토 제4장 乾嘉史學 1. 乾嘉연간의 史學통제 2. 건가의 사학사상 3. 私人治史의 博古경향 제5장 장학성의 사학 1. 장학성의 문사통의 2. 장학성의 사학이론 3. 장학성의 방지학 제1편 半植民地半封建 사회의 사학(상) 제1장 아편전쟁후 역사학의 중대한 변화 1. 龔自珍, 魏源의 사학사상과 사학연구의 새로운 기풍 2. 邊疆역사지리연구의 勃興 3. 南明史연구의 새로운 국면 제2장 자산계급사학의 맹아 1. 서학의 傳入과 新學의 흥기 2. 외국사연구의 소개와 연구 3. 康有爲의 역사진화관 제3장 자산계급 사학의 창립과 성장 1. 양계초의 신사학 이론 2. 하증우의 중국고대사 3. 왕국유의 古史연구 4. 章太炎의 사학사상과 성취 * 瞿林東, 中國史學史綱, 北京出版社, 2000 제7장 史學走向社會深層 --명대사학 1. 실록과 기타 官修사학 (1) 浩繁한 실록 (2) 皇朝의 典制史 大明會典 (3) 元史의 撰修 2. 私家의 本朝史 편찬 (1) 私家 편찬의 紀傳體 本朝史 (2) 私家편찬의 편년체 본조사 (3) 私家의 宋史 편찬 3. 方志와 稗史 4. 경제사 저작 (1) 治河, 漕運과 水利之史 (2) 농정, 염정, 荒政之史 5. 사학의 통속형식과 역사교육 (1) 사학의 통속형식 (2) 역사교육의 특징 6. 晩明사학의 崛起 (1) 王世貞의 본조사 저술 성취 (2) 왕세정의 사학비평 이론 (3) 李贄 역사평론의 비판정신 (4) 王圻와 속문헌통고 (5) 焦竑과 談遷 제8장 사학의 總結과 轉變 --청대 前期의 사학 1. 관찬 사서의 주요 성취 (1) 「명사의 편찬 (2) “三通”의 속찬과 淸“三通” (3) 청실록에 관하여 (4) 四史, 方略, 會典 2. 역사비판정신과 경세치용 사학사상의 발전 (1) 황종희의 역사비판정신 (2) 「明儒學案과 宋元學案의 역사적 가치 (3) 王夫之 史論의 역사적 가치 (4) 고염무의 경세치용적 사학사상 (5) 潛書와 讀史方輿紀要 3. 역사고증의 찬란한 성과 (1) 王鳴盛과 「十七史商榷 (2) 조익의 이십이사찰기 (3) 錢大昕의 이십이사고이 (4) 崔述의 고신록 4. 장학성과 중국 고대사학이론의 종결 (1) 圓神, 方智의 사학 (2) 史德과 心術 (3) 史意와 別識心裁 5. 阮元과 龔自珍 (1) 阮元의 역사문헌학 성취 (2) 龔自珍 역사사상의 시대특징 제9장 사회대변동 중의 역사학의 분화 -- 청대 후기 사학 1. 사학의 분화 (1) 전통사학의 延續 (2) 근대사학의 萌生 2. 邊疆史地 연구의 내용 (1) 張穆의 蒙古遊牧記 (2) 何秋濤의 朔方備乘 (3) 姚瑩의 「강유기행 3. 外國史地 연구의 새로운 국면 (1) 魏源과 해국도지 (2) 王韜의 저술 (3) 황준헌의 일본국지 4. 근대의식과 세계의식 (1) 아편전쟁 이후 사학발전의 새로운 추세 (2) 민족․강역․국가 (3) 중국 이외의 세계와 세계 범위내의 중국 5. 양계초와 장태염의 사학 (1) 양계초의 “신사학”이론의 제출 (2) 章太炎 역사사상의 시대 특징 * Franke, 명대의 역사저술, 劍橋中國明代史, 중국사회과학출판사, 1992 引言 : 若干普遍趨勢 國史館 역사관련 혹 역사자료로서의 명대 정부 출판물 개별 정부기구의 半官方 저작 半私的 그리고 개인의 종합체, 편년체 編史작업 傳記저술 각종 역사평론 經世文 外事와 軍事조직에 관한 저작 類書와 地理, 經濟, 科技著作 方志 * 吳懷祺主編/向燕南著, 中國史學思想通史, (明代卷), 黃山書社, 2002 제1편 제1장 明前期의 정치, 문화발전의 특징과 사학사상 1. 명대 전기 정치와 문화 專制의 강화 2. 三部 “大全”의 편찬과 명 전기 학술사상의 格局 3. 명 전기 사학과 사학사상의 특징 제2장 宋濂의 사학사상과 학술평론(附 : 方孝孺의 정통론과 그 영향) 제3장 王褘의 사학사상(정통관, 大事記續編) 제4장 丘濬의 정통관과 역사관(世史正綱, 大學衍義補) 제2편 제5장 명대 후기 사학사조의 흥기와 발전 1. 명대 후기 사회발전의 기본적 특징 2. 문화 및 사상발전의 새로운 格局(구조, 짜임새) 3. 사학사조의 주류와 그 상호관계 제6장 陳建의 경세사학사상(通紀의 사론) 제7장 薛應旂의 사학사상 제8장 王世貞 사학이론의 공헌 제9장 李贄의 역사비판과 사학비판(附 : 焦竑의 학술과 사학) 제10장 胡應麟의 사학과 역사문헌학이론 * 錢茂偉, 明代史學的歷程, 社會科學文獻出版社, 2003 敍論 1. 明代史學硏究的回顧與展望 2. 本書的硏究思路及結構安排 3. 明代史學演進的歷程 제1편, 明代前期 : 理學籠罩下的史學 제1장 正統論的起伏與史著的編纂 제1절 “朝代更易觀”與正統論的熾熱 제2절 方孝孺 : 明朝理學化正統論的奠基者 제3절 民族主義史學思潮的擡頭與世史正綱的編纂 제2장 綱常理論下的敎科書編寫模式 제1절 史鑑書的大量編纂 제2절 名臣言行錄的編纂 제3절 綱目及綱目體敎材的新編 제4절 民間的歷史敎材編纂 제3장 傳統紀事史學慣性下的官修活動 제1절 元史的纂修 제2절 起居注制度的設置與廢弛 제3절 朝廷修實錄 제4절 地方修方志 제4장 域外史地學的異軍突起 제1절 陳誠與西域行程記, 西域番國志 제2절 “西洋”史地學三書 제3절 黃省曾與西洋朝貢典錄 제5장 前期史學惡劣的生存環境 제1절 大環境 : 落後的經濟與强控制社會 제2절 小環境 : 統死了的文化 제2편 明代中期 : 中國史學的轉型 제6장 社會轉型與學術界的裂變 제1절 經濟的發展與社會的轉型 제2절 王學的興起 제3절 文學的復古 제7장 理學化史學批判風的興起 제1절 祝允明“叫板”正統史學 제2절 王世貞對理學化史學的批評 제8장 史學考信風的興起 제1절 楊愼與明代純學術硏究風的興起 제2절 王世貞與當代史考信風的開創 제3절 胡應麟與古典辨僞學的確立 제9장 史學理論的受人重視 제1절 明代前期的信史論 제2절 陸深與史通硏究風的興起 제3절 李夢陽, 瞿景淳與史學批評的開展 제4절 梁夢龍, 卜大有對傳統史學要義的思考 제10장 不同風格的宋元史改編 제1절 新春秋精神下的宋元史改編 제2절 “宋元通鑑”的編纂 제11장 中國通史的新編 제1절 邵經邦與弘簡錄 제2절 “留心治亂”的左編 제3절 “本天以立例”的函史 제4절 “以編年而兼紀傳”的歷代史書大全 제12장 當代史編纂的勃興 제1절 經世史學思潮與史漢風的興起 제2절 嘉靖前期的開國史編纂 제3절 陳建通紀: 本朝典故的權輿 제4절 鄭曉吾學編: 綜合體明史的首創之作 제5절 王世貞及其“明史稿” 제6절 鄧元錫與皇明書 제7절 當代史編纂的特徵 제3편 明末淸初 : 中國史學的多元化 제13장 萬曆中葉的本朝正史纂修活動 제1절 本朝正史纂修的背景 제2절 陳于陸與焦竑的修史思想 제3절 本朝正史纂修始末 제4절 本朝正史纂修失敗的原因 제5절 本朝正史纂修活動的影響 제14장 晩明當代史編纂的繁榮 제1절 童時明與吳士奇的綜合體明史纂修 제2절 分類體明史名山藏 제3절 “兼諸家之體”的皇明史槪 제4절 尹守衡與劉振的明史編纂 제5절 風靡晩明的通紀續補風 제6절 許重熙的當代史學成就 제7절 錢謙益: 一代史學宗師 제8절 晩明當代史編纂的特點,成就及不足 제15장 李贄與啓蒙史學思潮的出現 제1절 藏書對左編的繼承與批判 제2절 童心說: 李贄思想的基石 제3절 藏書人物史論的市民思想色彩 제4절 “李贄熱”所帶來的衝擊波 제16장 晩明“復興古學”思潮下的歷史硏究 제1절 張燧千百年眼: 晩明史學的傑作 제2절 朱明鎬與歷代正史全面硏究風的開創 제17장 治統與道統框架下的通史編纂 제1절 徐대鵬與古今治統 제2절 鄭郊與史統 제18장 走向民間的史學: 晩明的通俗史學 제1절 晩明的歷史演義 제2절 晩明的綱鑑風 제19장 王光魯與明代的史學工具書編纂 제1절 明代史學工具書的編纂 제2절 王光魯及其閱史約書 제20장 “國可亡, 史不可亡”: 淸初遺民的明史編纂 제1절 集編年體明史大成的國榷 제2절 “敢于龍門爭勝場”的石匱書 제3절 引發“莊氏史案”的明史紀略 제4절 “自出手眼”的罪惟錄 제5절 黃宗羲的明史學成就 제6절 淸初明史編纂風的持續繁榮與冷却 * 總論 明代史學的成就及歷史地位 * 傅玉璋, 傅正, 明淸史學史, 安徽大學出版社, 2004. 上編 제1장 明代史學 1. 明代史學槪述 1) 明代社會特點 2) 市民階層的出現和階級鬪爭的變化 3) 明代史學特點 2. 編纂元史與改修宋史 1) 宋濂等元史 2) 宋史的改修 3. 編年體史書的編修和紀事本末體史著之續作 1) 編年體史著 2) 紀事本末體史著 4. 方志學與地理學 1) 總志的編輯 2) 各省通志, 府․州․縣志 3) 地理學 : 徐霞客游記 5. 典制體要籍和明實錄 1) 大明會典 2) 永樂大典 3) 皇明經世文編 4) 明實錄 6. 目錄學 1) 官藏書目 2) 私家書目 제2장 明代野史 1. 王世貞弇山堂別集 1) 文學修養與復古思想 2) 記述內容和編寫方法 3) 治史態度與直筆精神 4) 揭露隱私, 糾正謬誤 5) 補充史實 2. 沈德符萬歷野獲編 1) 內容豊富, 取材可靠 2) 補充史實 3) 充實資料, 發表評論 4) 揭露腐敗和殘暴 5) 贊揚好人好事 6) 考證歷史 3. 談遷國榷 1) 直書實錄, 批孔孟 2) 勤于考訂 3) 評論歷史 4. 李贄的史學思想 1) 反理學, 批孔孟 2) 重視生産, 贊揚改革 3) 評論歷史人物 4) 編纂學 5. 陳建皇明從信錄, 皇明通鑑輯要和鄧元錫明書 1) 陳建皇明從信錄, 皇明通鑑輯要 2) 鄧元錫明書 제3장 明淸之際三大史學思想家 1. 淸初史學的開山祖 - 黃宗羲 1) 明儒學案 2) 宋元學案 3) 明夷待訪錄 2. 開闢新學風的史學家 - 顧炎武 1) 改革社會積弊的政治思想 2) 歷史編纂學 3) 考據學 3. 獨樹一幟的史論大師 - 王夫之 1) 歷史進化論 2) 嚴以治史, 寬以養民 3) 史學觀點 4) 民族意識 下編 제4장 淸代前期的史學 1. 淸代前期史學槪述 1) 淸朝的文化專制和四庫全書的編纂 2) 抨擊君主專制制度和批判陳腐理學的史學著作 3) 淸代的文字獄和乾嘉史學 2. 編修明史與硏究古史 1) 「明史」的編修 2) 古史的硏究 제5장 編年體史著與紀事本末體史著的發展 1. 編年體史著 1) 徐乾學資治通鑑後編 2) 畢沅續資治通鑑 3) 夏燮明通鑑 4) 陳鶴明紀 2. 紀事本末體史著 1) 谷應泰明史紀事本末 2) 楊陸榮三藩紀事本末 3) 李有棠遼史紀事本末和金史紀事本末 4) 吳偉業綏寇紀略 제6장 乾嘉時期的考據學 1. 考據學的形成 2. 整理古籍的成果 1) 舊史的編訂與整理 2) 舊史的校勘與辨證 3) 舊史的遺缺 4) 舊史輯佚 3. 三大史學考據家 1) 王鳴盛十七史商榷 2) 錢大昕二十二史考異 3) 趙翼二十二史箚記 제7장 方志學與沿革地理 1. 方志的編修 1) 編修槪況 2) 修志學派 3) 方志的通病 2. 沿革地理的硏究 : 顧祖禹和讀史方輿紀要 1) 作者生平和讀史方輿紀要的編輯 2) 讀史方輿紀要的內容 3) 詳記軍事地理 4) 關心國計民生 5) 重視江河的變遷與利弊 6) 資料翔實, 考證精審 제8장 淸代傳記的野史 1. 張岱的石匱藏書與石匱書後集 1) 寫史態度與動機 2) 編纂靈活, 內容充實 3) 歌頌正義, 反對貪暴 4) 批判皇帝, 鞭笞宦官 2. 査繼左的罪惟錄 1) 査繼左成長在社會大動蕩時期 2) 內容豊富, 記事全面 3) 編纂方法有創新 4) 對歷史事件和人物進行評論 3. 計六奇的「明季北略與明季南略 1) 南北略的重要內容 2) 南北略取材廣博 3) 對史料的鑑定 4) 南北略的歷史評論 4. 溫睿臨的南疆逸史 1) 編纂方法與版本 2) 歌頌抗淸, 反對貪暴 3) 兼書文化與科技 4) 史論觀點獨到 제9장 類書․叢書․典制體要籍和目錄學 1. 類書與叢書 1) 古今圖書集成 2) 四庫全書及四庫全書薈要 2. 實錄與政典 1) 淸實錄與東華錄 2) 續三通 3) 淸三通 4) 淸會典 5) “方略”與“紀略” 3. 目錄學 1) 官藏書目 2) 私家書目 제10장 章學誠的史學思想和方志學成就 1. 歷史學上的貢獻 1) 學術淵源 2) 擴大史學範圍 3) 方智地記注和圓神地撰述 4) 史學思想 2. 方志學上的主要見解 1) 方志的性質與功能 2) 方志是以行政區域爲主的史書 3) 方志與史部中的地理書有區別 4) 修志方法 5) 修志體例 6) 州縣立志科 3. 主修諸志 1) 和州志 2) 永淸縣志 3) 亳州志 4) 湖北通志 4. 預修諸志 5. 目錄學上的成就 1) 韻編的編輯 2) 史學別錄的編輯 3) 史籍考的編輯 附錄 1 : 明淸檔案館庫(傅樣) 附錄 2 : 主要參考書目 * 吳懷祺主編/王記錄著, 中國史學思想通史 (淸代卷), 黃山書社, 2002 導言 1. 청대 사학의 지위와 사학사상의 특징 2. 漢學, 宋學과 청대 사학사상 제1편 緖言 제1장 황종희의 사학사상 제2장 고염무의 역사성쇠론 제3장 왕부지의 사론 제4장 顧祖禹의 사학사상 제5장 염약거의 古史방법론 제6장 청대 官撰史書의 사학관념 1. 청대 관찬사서의 성취와 사학사상 2. 明史編修史의 역사편찬학 주장 제2편 제7장 戴震의 사학과 그 사상방법 제8장 王鳴盛의 史考와 史論 제9장 趙翼의 治史旨趣와 사학사상 제10장 錢大昕의 사학사상 제11장 崔述의 考信辨僞와 사학사상 제12장 장학성의 사학사상 1. “史義”와 장학성의 전통사학의 발전에 대한 종합 2. “獨斷之學”과 “考索之功” 3. “史德”과 “文德” 4. “六經皆史”설과 사학변혁론 * 附 : 청대 지역성 사학의 발전과 그 특징 제13장 사고전서총목의 사학비평 제3편 제14장 阮元의 학술성취와 사학사상 제15장 청대 中前期 邊疆史地學의 사학사상 1. 康乾시기 邊疆史地연구의 흥기 2. 嘉道연간 邊疆史地學의 흥성과 사학사상의 특징 3. 청대 변강 史地學者의 치학방법 제16장 龔自珍의 사학사상 餘論 道咸 이후 사학사상의 발전 趨向 * 胡逢祥, 張文建, 中國近代史學思潮與流派, 華東師範大學出版社, 1991 제1장 아편전쟁시기의 경세치용 사학사조 1. 晩淸史學主潮의 演變 1) 청대 고거학의 성쇠 2) 만청 사회위기와 경세학술 3) 전통사학의 내부적 분화 2. 西北史地學의 흥기 1) 西北史地硏究 분위기의 형성 2) 張穆과 蒙古游牧記 3) 何秋濤와 朔方備乘 3. 開眼看世界의 外國史地 탐토 1) 반침략으로부터 “開眼看世界” 2) 중국의 첫 번째 世界史地志 - 海國圖志 3) 양정동과 徐繼畬의 世界史地 연구 4. 當代史 저술의 유행 1) 私家 纂修 당대사 禁區의 돌파 2) 聖武記의 청사에 대한 창조적 연구 3) 아편전쟁사 연구의 유행 제2장 洋務思潮 영향 하의 史學 1. 洋務思潮와 사학 1) 양무사학 발생의 역사적 배경 2) “增其新而不變舊”의 洋務史學 2. “中興史”와 外交史의 편찬 1) 中興史 편찬의 유행 2) ‘夷務“와 外交史편찬 3. 부국강병을 탐구하는 科技史와 軍事史 4. 走向世界의 外國史地 考察 1) “開眼看世界”로부터 走向世界로 2) 自强과 外國史地 5. 光緖朝의 元史學 1) 光緖朝의 元史學과 그 유파 2) 고증파의 元史문헌에 대한 정리와 연구 3) 曾廉과 柯劭忞의 元史 改寫 4) 屠寄의 몽올인사기(蒙兀儿史記) 6. 선교사들의 史書編譯과 그 영향 제3장 20세기초 新史學 思潮 1. 新史學思潮和資産階級史學的確立 : 新史學의 흥기, 宗旨, 초보적 실천 2. 西方史學的輸入與中國史學的近代化(수입의 과정, 내용, 사회학과 역사학, 근대사학이론) 3. 新史學的奠基人梁啓超 4. 資産階級的外國史硏究(戊戌變法時期, 辛亥革命時期 飜譯과 연구 등) 5. 新式歷史敎學與敎科書的編著(淸季學堂의 흥기와 역사과정설치, 역사교과서출현과 발전) 제4장 辛亥革命時期的國粹主義史學思潮 1. 國粹史學的形成(國粹派와 國粹史學, 국수사학의 영혼-민족주의) 2. 國粹派的治史方法與學術成就 3. 國粹派的“民族文化論”及其局限 4. 國粹史學的巨擘章太炎(文化史연구와 역사민족주의의 闡發) 제5장 五四時期的史學思潮和流派 1. 資産階級史學發展的新趨勢(신문화운동과 사학의 발전, 서방사학의 유입, 신사료의 발견) 2. 反封建的疑古史學(辛亥後復古思潮, 疑古派와 信古派의 논쟁) 3. 考古派史學的繼起(王國維, 陳寅恪, 李濟 등) 4. 實用主義史學的流傳和衍化(胡適, 何炳松의 실용주의사학과 신사학) 5. 文化史硏究的興起和通俗史學(동서문화논쟁과 중국문화사 연구, 통속사학의 보급) 제6장 曙光初露的馬克思主義史學 * 馬金科, 洪京陵 編著, 中國近代史學發展敍論(1840-1949),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94 제1장 淸代學術思想的演變與龔自珍, 魏源的“經世”史學思想 제1절 淸代學術思想的演變與“經世致用”觀點 1. 淸初批判理學思潮與“經世致用”觀點 2. 漢學的興起與史學傾向 3. 今文經學的興起 4. 西方資本主義入侵與“西學東漸” 제2절 龔自珍的歷史觀和史學思想 1. 龔自珍及其歷史觀 2. 龔自珍的史學思想 제3절 魏源的歷史觀和史學思想 1. 魏源及其歷史觀 2. 魏源的史學思想 제2장 19世紀40-50年代中國人對外國史地的初步硏究 제1절 第一次阿片戰爭後思想風氣的變化. 海國圖志的刊行 1. “睜眼看世界”的開始 2. 「海國圖志的編纂及其主要成就 제2절 徐繼畬等人介紹西方史地的著述 1. 徐繼畬與瀛環志略的編纂 2. 瀛環志略的主要內容與影響 3. 康輶紀行, 海國四說 제3장 社會矛盾激化下的憂患意識與邊疆史地學硏究 제1절 憂患意識與邊疆史地學的興起 제2절 邊疆史地學的代表作 - 張穆蒙古游牧記與何秋濤朔方備乘 제3절 邊疆史地學硏究的發展趨勢, 方志學 제4장 元史與遼, 金, 西夏史硏究的新成就 제1절 近代元史硏究 제2절 近代元史硏究的新成就 제3절 硏究遼金西夏史的主要代表及著述 제5장 淸代文網漸疏後的南明史和當代史硏究 제1절 近代南明史與當代史硏究的興起 제2절 咸豊年間太平天國史的編纂與有關當代史著 제6장 西學的倡導與外國史硏究的繼續深入 제1절 洋務運動中西方史著的飜譯 제2절 介紹外國情況的筆記, 雜記. 王韜的外國史硏究 제3절 黃遵憲的日本史硏究. 外交史料的編輯 제7장 新史學的醞량 제1절 變法維新思想的發展與社會進化論的輸入 1. 甲午戰後變法維新思想的發展 2. 嚴復與天演論發表的現實意義 제2절 康有爲的歷史觀與史著 제3절 梁啓超等維新派在戊戌時期的史學思想(梁啓超, 譚思同, 唐才常, 徐仁鑄) 제8장 新史學的産生與發展 제1절 新史學體系的初步形成 1. 20世紀初梁啓超對史學宗旨的論述 2. 梁啓超對新史學體系的探討 3. 梁啓超早期史著的特點 제2절 章節體通史著作的出現, 歷史方法論的探討 1. 夏曾佑與最新中學中國歷史敎科書 2. 20世紀初歷史敎科書編印槪況 3. 20世紀初歷史方法論的探討 제3절 20世紀初中國史料的新發現 1. 甲骨文的發現與硏究 2. 漢晉簡牘的發現 3. 敦煌寫本的發現 4. 內閣大庫檔案資料的整理 * 吳澤 主編, 中國近代史學史 상, 하, 江蘇古籍出版社, 1989 제1편 鴉片戰爭到太平天國時期的史學(1840-1864) 제1장 鴉片戰爭前夕封建地主階級改革派史學 제1절 乾嘉考據學的分解與沒落 제2절 龔自珍史學 제3절 魏源的社會改革思想與史學 제4절 聖武記的編撰及其史學觀點 제5절 張穆, 何秋濤的邊疆歷史地理硏究 제2장 鴉片戰爭時期地主階級改革派史學和投降派史學 제1절 外國史地的硏究及海國圖志的編撰 제2절 海國四說和瀛環志略的編撰 제3절 道光洋艘征撫記的愛國史學思想 제4절 梁廷동和鴉片戰爭史硏究 제5절 夏燮中西紀事的編撰 제6절 投降派觀點史籍的編撰 제7절 爲投降派辯護的庚申夷氛紀略 제3장 太平天國時期的元, 明史硏究 제1절 魏源的明史硏究 제2절 魏源元史新編及其在史學上的影響 제3절 夏燮的民族思想和明史硏究 제4절 徐鼐的南明史硏究及其封建正統史觀 제4장 地主階級各史學流派, 早期資産階級改良派史學, 太平天國革命者及外國學者對太平天國史的記載和硏究 제1절 夏燮粤氛紀事及其歷史評論 제2절 太平天國在史學上的建樹 제3절 王韜的史學思想與太平天國史硏究 제4절 外國人和呤唎對太平天國史的硏究 제5절 王闓運的史學觀點和湘軍志的編撰 제2편 太平天國革命失敗後到義和團運動時期的史學(1865-1901) 제1장 資産階級改良派史學的發生發展 제1절 王韜對普魯士, 法國和日本史的硏究 제2절 鄭觀應的史學思想與盛世危言的編撰 제3절 黃遵憲的日本維新史硏究 제4절 後期兩洋務派史學 제5절 嚴復早期的庸俗歷史進化論 제6절 康有爲前期的史學思想 제7절 梁啓超前期的史學思想和建立資産階級“新史學”的理論 제2장 封建地主階級正統主義史學 제1절 王先謙史學 제2절 葉德輝史學 제3절 繆荃孫史學 제3장 封建地主階級考據派和早期資産階級考據派的歷史地理硏究, 元史硏究 제1절 楊守敬在歷代彊域沿革地理學上的貢獻 제2절 丁謙的西北歷史地理硏究 제3절 洪鈞的元史硏究 제3편 義和團運動失敗後到五四運動時期的史學 제1장 資産階級改良派史學 제1절 戊戌變法後康有爲的三世三重說歷史進化論 제2절 嚴復後期的歷史自然演進說 제3절 梁啓超的資産階級史學理論體系的確立 제4절 夏曾佑與中國古代史硏究 제5절 柳詒徵與歷代史略 제6절 章太炎早期古文經學派的古史硏究及維新思想 제2장 資産階級革命派史學 제1절 孫中山的民生史觀 제2절 辛亥革命醞량時期章太炎的革命民主思想及古史硏究 제3절 劉師培前期的革命民主思想與中國歷史敎科書 제4절 資産階級民主革命派和改良派在世界史, 革命史硏究上的鬪爭 제3장 封建地主階級正統派和資産階級改良派的元史硏究 제1절 曾廉的元史硏究 제2절 柯紹忞的元史硏究 제3절 屠寄的改良主義史學思想及其對元史的硏究 제4장 民初至五四運動資産階級革命派史學, 改良派史學和封建復古史學 제1절 辛亥革命後章太炎的史學思想和淸史硏究 제2절 新史料的發現與整理 제3절 王國維在古史硏究上之貢獻 제4절 通俗史學的發展與蔡東藩中國歷代通俗演義的編撰 제5절 封建復古史學 제5장 新史學的曙光 제1절 中國資産階級史學的演變 제2절 馬克思主義唯物史觀的傳播 제3절 中國馬克思主義史學的誕生 * 高國抗, 楊燕起, 中國近代史學槪要, 廣東高等敎育出版社, 1994 上篇 封建舊史學籍分化, 延續及沒落(鴉片戰爭前夕至第二次國內革命戰爭時期) 제1장 封建地主階級經世派史學的出現(鴉片戰爭前夕至太平天國革命運動時期) 1. 當代史硏究的興起 2. 邊疆史地硏究的勃興 3. 外國史地的探討 4. 龔自珍在史學理論上的建樹 5. 魏源的著史成就 제2장 封建舊史學籍延續及沒落(鴉片戰爭前夕至第二次國內革命戰爭時期) 1. 淸末官修史書的編纂 2. 洪鈞, 楊守敬, 丁謙, 王先謙, 繆荃孫, 柯紹忞, 徐世昌, 淸史稿 등 중편 資産階級新史學的興起與發展(第二次鴉片戰爭至新中國成立) 제1장 西學的輸入及其對中國史學的影響(鴉片戰爭後至五四運動前後) 1-4 : 서학수입, 嚴復의 天演論과 서방사회학, 서방의 각종 사학이론, 서학 수입의 영향 ) 제2장 資産階級史學的萌芽(第二次鴉片戰爭後至戊戌變法失敗) 1. 對封建史學的批判 2. 外國史的編撰和硏究 3. 鄭觀應盛世危言及其歷史觀, 康有爲的歷史進化觀 제3장 資産階級新史學的形成(戊戌變法失敗至五四運動前夕) 1. 梁啓超及其中國史敍論與新史學 2. 章太炎及其史學思想 3. 夏曾佑中國古代史 4. 屠寄蒙兀儿史記 제4장 資産階級新史學的發展和分化(五四運動至新中國成立) 1. 新史料的發現與整理 2. 王國維及其古史硏究 3. 胡適及其中國哲學史大綱 4. 梁啓超中國歷史硏究法及其補編 5. 顧頡剛與古史辨派 6. 呂思勉及其白話本國史 7. 陳寅恪及其史著 8. 陳垣及其史著 9. 蔣廷黻及其中國近代史 下編, 中國馬克思主義史學的出現與成就9五四運動至新中國成立) 1-7 : 이대조, 곽말약, 여진우, 범문란, 전백찬, 후외려 등 *張凱之, 中國近代史學學術史,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6 제1편 近代史學哲學 제1장 古代史學哲學的形成發展及其特色 제2장 明淸之際至鴉片戰爭前史學哲學的新發展與近代史學哲學的發軔 1. 明淸之際學術精神的新趣向 2. 乾嘉樸學的史學哲學 3. 嘉慶道光年間中國社會的變革與學術硏究新因素的結合 제3장 正統史學的回歸與新史學的醞釀(鴉片戰爭後至戊戌變法時期的史學哲學) 1. 正統派史學的復興 2. 經學史硏究的新氣象與史學哲學的反思 3. 外國史地硏究與中外歷史的對比中表現的關于歷史進程的新觀點 제4장 新史學哲學理論的初步建樹 1. 戊戌後至20世紀初年的史學思潮 2. 梁啓超與章太炎早年的史學思想 3. 新史學思潮的評價 제5장 新史學哲學的不同體系 1. 章太炎, 梁啓超史學思想的變化及其所反映的問題 2. 傳統文化主體論與新史學哲學派之一 3. 文化西化論與新史學哲學派之二 4. 馬克思主義文化觀與新史學哲學流派之三 제2편 近代史學方法 제1장 古代史學方法的內容與特點 제2장 淸前期史學方法的進步與近代史學方法的開端 1. 淸初硏究方法的進步與史學方法的新因素 2. 乾嘉樸學的史學方法 제3장 鴉片戰爭前後至戊戌變法時期的史學方法 1. 嘉慶道光年間的史學方法 2. 鴉片戰爭後到戊戌維新時期的史學方法 제4장 19世紀末20世紀初新史學方法的初步運用 : 梁啓超, 章太炎의 新史學方法論 제3편 近代史學學術成果 : 關于中外歷史和歷史地理學的硏究 제4편 近代史學學術成果 : 考古學 * 陳其泰, 中國近代史學的歷程, 河南人民出版社, 1994 총론 : 中國近代史學發展趨勢 1. 近代史學 : 跨世紀的歷程 1) 突破傳統學術格局的歷史性躍進 2) “新史學”的倡導和發展 3) 馬克思主義史學成爲主流 4) 近代史學留給我們的深刻啓示 2. 近代史家對傳統史學的批判繼承 1) “摒棄” 還是揚棄? 2) 歷史觀點的吸收發揮 3) 治史方法的繼承發展 4) 歷史編纂的改造和提高 3. 近代史家對通史體例的探求 1) 馬驌, 章學誠的嘗試和主張 2) 章太炎和梁啓超修撰中國通史的設想 3) 回答史學發展提出的問題 상편 : 19世紀的中國近代史學 1. 龔自珍的社會歷史觀 2. 聖武記對淸代盛衰的探索 3. 魏源與鴉片戰爭史 4. 魏源與中西文化撞擊 5. 徐繼畬瀛環志略的成就 6. 近代愛國史家夏燮 7. 海國圖志日本國志比較 8. 黃遵憲的中西文化觀 9. 黃遵憲與客家硏究 하편 : 20世紀的中國近代史學 1. 梁啓超 : 近代學術文化的開拓者 2. 夏曾佑與通史撰著 3. 20世紀初宣傳革命的歷史思想 4. 陳寅恪治史風格 5. 陳垣學術思想的昇華 6. 郭沫若史學的時代精神 7. 范文瀾 : 從國學向唯物史觀的跨越 8. 侯外廬學術的特色 *兪旦初, 愛國主義與中國近代史學,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6 簡論19世紀後期的中國史學 20世紀初年中國的新史學 20世紀初年中國的愛國主義史學思潮 20世紀初年中國的反帝愛國史學 20世紀初年法國大革命史在中國的介紹和影響 美國獨立史在近代中國的介紹和影響 中國近代愛國主義與“亡國史鑑” 辛亥革命時期的民族英雄人物史鑒 中國近代史學界對歷史和科學的關係問題的最初提出 |
2017년 12월 17일 일요일
명청사학연구논저목차
청초 경세학, 공양학
구경(九經) 가운데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을 중시하여 연구하는 학문. 서한(西漢) 초기에 생긴 금문학파(今文學派)는 공자(孔子)를 정치가로, 그가 편성한 육경(六經)을 공자의 정치이론서라고 생각하였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춘추공양전》에 그 핵심 사상이 들어 있다고 생각하여 서한의 대학자 동중서(董仲舒)와 공손룡(公孫龍)이 중심이 되어 이 공양학을 창설하였다. 또 중국은 하나라는 사상인 이른바 대일통(大一統)사상이 공양전 속에서 강조되자, 이 학문 정치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판단한 한나라 무제가 정치이론서로 선택하고 또 공손홍을 승상으로 등용하자 공양학은 매우 번창하였다. 후한(後漢) 때는 학자 하휴(何休)가 《춘추공양해고(春秋公羊解)》 《공양묵수(公羊墨守)》 《좌씨고황(左氏膏)》 《곡량폐질(穀梁廢疾》 등을 지어 더욱 발전시켰는데, 이 학문이 극성기를 맞은 것은 청(淸)대였다. 청대에 강소(江蘇), 절강(浙江)지방에서 이 학문이 다시 번창하여 장존여(莊存與)와 장유가(莊有可) 등이 상주학파(常州學派)를 결성하여 정치이론학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청말엔 추평(平)․캉유웨이[康有爲]․담사동(譚嗣同)․양계초(梁啓超) 등이 공양학을 정치이론으로 크게 발전시켰다. 또 1891년에 캉유웨이가 간행한 《신학위경고(新學僞經考)》는 고문파의 경학을 호되게 비판한 금문경학(今文經學)의 집대성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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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는 송대의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와 주희(朱熹)가 정립한 성리학(性理學)을 관학으로 받아들였다. 성리학은 지주와 전호 사이의 엄격한 상하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규범과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학문체계였다. 청나라는 이러한 성리학의 이론이 백성을 통치하고 사회를 통합시키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관학(官學)으로 수용했다.
명나라 말기에는 과거를 준비하면서 학문과 문장을 학습하는 단체인 문사(文社)가 있었다. 그 구성원에는 관료도 있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은 독서인이 다수였고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들은 명나라 말기에 환관의 부패를 척결하고 유교적 이상을 고양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고, 청이 북경을 장악한 이후에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원인을 규명하고, 청조에 충성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로 갈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대부 가운데 일부는 명나라 유민(遺民)을 자처하며 청나라에 저항했고, 명나라가 멸망하기에 이른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송의 이학(理學)과 명의 심학(心學)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세상을 다스리는 학문인 경세학을 제창하기에 이르렀으며, 대표적인 인물은 고염무(顧炎武), 황종희(黃宗羲), 왕부지(王夫之) 였다. 청조의 경세학은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의 개선과 한족의 자주 독립은 강하게 호소했으며, 청 정부로부터 억압을 받았다(임계순(2000), 231~232).
고염무는 강소성 곤산(崑山) 사람으로 무석(無錫) 동림서원(東林書院)에 근거를 둔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인물들과 교류했다. 동림당 인물들은 환관이 주도하는 명나라 말기의 정치적 폐해를 비판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에 학문의 목적을 두었으며 행정, 재정, 군사 전반에 걸친 개혁에 관해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학문적 근거는 주자학이고, 수양의 실천이라는 학문적 본령을 벗어나지 않았다.
고염무는 학문 연구의 목적을 명체달용(明體達用 : 체를 밝히고 용에 통달함)과 경세제민에 두고, 이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 :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함)를 중시했다. 실사구시란 『한서』 「유덕전(劉德傳)」의 “修學好古 實事求是”란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청대의 학문은 한학(漢學)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고염무는 경학이 발전했던 시대로 돌아가 유학의 의의를 재평가하려고 했다. 그가 “옛날의 이른바 이학(理學)은 경학(經學)이다.”라고 한 것도 허망한 이론에 빠진 이학이 아니라 경학의 본뜻에 바탕을 둔 유학의 부흥을 추구한 것이다. 고염무의 『일지록(日知錄)』은 그의 경세학적 의도가 잘 나타나는 책으로, 경학, 정치, 풍속, 예제, 과거, 문학 등의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언급하여 경세학 연구자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왕부지는 호남성 형양(衡陽) 사람으로, 학술의 중심지인 강남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출신이었다. 그는 한학을 기초로 하고 송학을 학문의 요지로 삼았으며, 학문의 목적을 경세치용에 두었다. 그는 “사람의 욕망은 천리(天理)의 지정(至正)이라”고 하여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다. 이는 사회적 욕망이라고 할 영리(營利)를 인정하는 것으로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성리학적 천리관(天理觀)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왕부지는 『독통감론(讀通鑑論)』에서 역사를 바탕으로 시정(時政)을 비판했고, 천하를 사유화하는 군주의 전제 대신에 지극히 공평한 정치를 주장했다(大谷敏夫(1997), 220~225).
청조의 경세학은 고염무, 황종희, 왕부지 등에 의해 정치개혁의 학문으로 연구되었고, 청조가 안정기에 들어간 이후에는 억압을 받았다. 18세기에는 고전의 고증을 위주로 하는 고증학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내외적으로 위기상황이 계속되면서 경세학은 다시 각광을 받았다. 이 시기의 경세학은 상주학파(常州學派)의 공양학(公羊學)에 이론적 근거를 두었다.
강남의 상주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공양학은 당대의 학술을 일변시켰다. 공양학의 대표적 학자로는 장존여(莊存與), 유봉록(劉逢祿), 송상봉(宋翔鳳)이 있다. 장존여는 공양학 연구의 개조이며, 그가 지은 『춘추정해(春秋正解)」는 공양춘추를 공부하는 학자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장존여는 이공(李塨)의 사상에도 관심을 가져 실용적인 학문을 중시했다.
유봉록은 장존여의 외손자이다. 그는 동중서(董仲舒)의 『춘추번로(春秋繁露)』와 하휴(何休)의 『공양해고(公羊解詁)』를 연구했고, 이들의 학설을 바탕으로 『춘추』에 나타난 공자의 미언대의(微言大義)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봉록은 특히 하휴의 삼과구지설(三科九旨說)을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는 쇠란(衰亂)→승평(昇平)→태평(太平)의 단계로 진보한다는 것이 공자의 미언이며, 청나라의 역사적 현실을 이런 시각에서 파악했다. 유봉록의 학설은 청말 변법개혁가인 캉유웨이[康有爲]에게 수용되어 『신학경위고(新學經緯考)』란 저서로 나타났다.
송상봉은 장존여의 조카인 장술조에게 공양학을 배운 학자이다. 그는 『논어설의(論語說義)』에서 자공(子貢) 이하 64명이 공자의 미언을 좇아 공자를 소왕(素王)으로 모셨다고 서술했다. 유봉록이 말한 ‘미언대의’와 ‘삼과구지설’, 송상봉의 ‘공자소왕설’은 공양학의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19세기에 활동한 위원(魏源)과 공자진(龔自珍)은 유봉록에게 공양학을 배우고 이를 정치개혁의 이론으로 삼은 인물이었다. 위원은 송학을 배우다가 경세학을 지향했고, 공양학의 ‘삼과구지설’을 보다 현실적인 변화사관으로 심화시켰다. 위원은 유교의 이상적 정치인 요(堯) 순(舜) 우(禹)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치(治)이고, 국가의 부강을 위해 서양 국가의 산업과 군사시설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원은 『해국도지(海國圖志)』에서 국가의 부강을 위해 상리(商利)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영리를 인간의 욕망으로 파악했던 대진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정책적으로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공자진은 유봉록의 공양학과 장학성의 사학 이론을 수용한 학자였다. 그는 경학과 사학을 연구하는 목적이 미래를 예측하는 미언대의를 밝히는데 있다고 했고, 당대의 정치 사회를 개혁하는 방안으로 농종(農宗)이나 평균(平均) 같은 논의를 전개하고, 신강성(新疆省)의 개발과 방비를 주장했다.
19세기에 강남의 상주지역에서 발전한 경세학은 이후 영남지역으로 전래되어 캉유웨이, 량치차오[梁啓超]와 같은 근대 정치사상가가 등장했다(大谷敏夫(1997), 24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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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 경세학의 전개
http://contents.nahf.or.kr/item/item.do?levelId=edeah.d_0004_0040_0020_0010
청나라는 송대의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와 주희(朱熹)가 정립한 성리학(性理學)을 관학으로 받아들였다. 성리학은 지주와 전호 사이의 엄격한 상하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규범과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학문체계였다. 청나라는 이러한 성리학의 이론이 백성을 통치하고 사회를 통합시키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관학(官學)으로 수용했다.
명나라 말기에는 과거를 준비하면서 학문과 문장을 학습하는 단체인 문사(文社)가 있었다. 그 구성원에는 관료도 있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은 독서인이 다수였고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들은 명나라 말기에 환관의 부패를 척결하고 유교적 이상을 고양할 수 있는 개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했고, 청이 북경을 장악한 이후에는 이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원인을 규명하고, 청조에 충성해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로 갈등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대부 가운데 일부는 명나라 유민(遺民)을 자처하며 청나라에 저항했고, 명나라가 멸망하기에 이른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송의 이학(理學)과 명의 심학(心學)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세상을 다스리는 학문인 경세학을 제창하기에 이르렀으며, 대표적인 인물은 고염무(顧炎武), 황종희(黃宗羲), 왕부지(王夫之) 였다. 청조의 경세학은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의 개선과 한족의 자주 독립은 강하게 호소했으며, 청 정부로부터 억압을 받았다(임계순(2000), 231~232).
고염무는 강소성 곤산(崑山) 사람으로 무석(無錫) 동림서원(東林書院)에 근거를 둔 동림당(東林黨) 계열의 인물들과 교류했다. 동림당 인물들은 환관이 주도하는 명나라 말기의 정치적 폐해를 비판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에 학문의 목적을 두었으며 행정, 재정, 군사 전반에 걸친 개혁에 관해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이들의 학문적 근거는 주자학이고, 수양의 실천이라는 학문적 본령을 벗어나지 않았다.
고염무는 학문 연구의 목적을 명체달용(明體達用 : 체를 밝히고 용에 통달함)과 경세제민에 두고, 이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 :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함)를 중시했다. 실사구시란 『한서』 「유덕전(劉德傳)」의 “修學好古 實事求是”란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청대의 학문은 한학(漢學)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고염무는 경학이 발전했던 시대로 돌아가 유학의 의의를 재평가하려고 했다. 그가 “옛날의 이른바 이학(理學)은 경학(經學)이다.”라고 한 것도 허망한 이론에 빠진 이학이 아니라 경학의 본뜻에 바탕을 둔 유학의 부흥을 추구한 것이다. 고염무의 『일지록(日知錄)』은 그의 경세학적 의도가 잘 나타나는 책으로, 경학, 정치, 풍속, 예제, 과거, 문학 등의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언급하여 경세학 연구자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지금의 학자들은 육예(六藝)의 문장을 학습하지 않고, 백왕(百王)의 경전을 연구하지 않으며, 당대의 실무를 다하지 않고, 공자가 학문과 정치를 논한 큰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는다. 일관(一貫)과 무언(無言)을 논하고, 명심견성(明心見性)의 공허한 말을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실학으로 바꿔놓고 있다. 팔과 다리를 게을리하여 만사에 거칠어지고, 자기를 보좌하는 사람들을 없애 사방의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며, 신주(神州, 중국)를 무너뜨려 종묘사직을 공허하게 했다. [주]
황종희는 절강성 여요현(餘姚縣) 사람이다. 부친 황존소(黃存素)가 동림당 계열의 인물이었고 황종희 자신도 그 동조자였다. 황종희는 여요현 출신의 양명학자인 유종주(劉宗周)의 영향을 받아 양명학의 양지설(良知說)을 바탕으로 한학을 연구했고, 경학 연구의 바탕을 한학에 두고 경세학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에서 고염무와 같았다. 황종희는 청나라의 지배가 확정된 이후 명나라 유민(遺民)으로 저술에 전념했다. 그는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에서 명나라가 멸망한 이유는 행정, 재정, 군사 등의 분야에서 폐해가 누적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개혁안을 제시했다.
명대에는 세금을 납부할 때나 일반적인 교역에서 은(銀)만을 통화로 사용했다. 은이 결핍되면 은값이 폭등하고 상대적으로 모든 물가가 하락했으며, 사람들은 은을 구하기가 어려워져 고통을 받았다. 조세로 은을 사용하는 것을 중지하고, 아울러 은의 유통을 일체 금지하며, 동화(銅貨)와 지폐를 발행하여 유통을 원활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민간의 사치, 허례, 속신(俗信)에 따른 쓸데없는 비용을 없애 사람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주]
황종희는 『송원학안(宋元學案)』과 『명유학안(明儒學案)』을 저술하여 송대 이후 학자들의 전기(傳記)와 학설의 계통을 밝혔다. 황종희의 사상에는 군주의 전제를 비판하고 민생의 향상을 구하는 내용이 들어있어, 민주 사상의 실마리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왕부지는 호남성 형양(衡陽) 사람으로, 학술의 중심지인 강남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출신이었다. 그는 한학을 기초로 하고 송학을 학문의 요지로 삼았으며, 학문의 목적을 경세치용에 두었다. 그는 “사람의 욕망은 천리(天理)의 지정(至正)이라”고 하여 인간의 욕망을 긍정했다. 이는 사회적 욕망이라고 할 영리(營利)를 인정하는 것으로 인간의 욕망을 부정적으로 보았던 성리학적 천리관(天理觀)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왕부지는 『독통감론(讀通鑑論)』에서 역사를 바탕으로 시정(時政)을 비판했고, 천하를 사유화하는 군주의 전제 대신에 지극히 공평한 정치를 주장했다(大谷敏夫(1997), 220~225).
청조의 경세학은 고염무, 황종희, 왕부지 등에 의해 정치개혁의 학문으로 연구되었고, 청조가 안정기에 들어간 이후에는 억압을 받았다. 18세기에는 고전의 고증을 위주로 하는 고증학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와 내외적으로 위기상황이 계속되면서 경세학은 다시 각광을 받았다. 이 시기의 경세학은 상주학파(常州學派)의 공양학(公羊學)에 이론적 근거를 두었다.
강남의 상주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공양학은 당대의 학술을 일변시켰다. 공양학의 대표적 학자로는 장존여(莊存與), 유봉록(劉逢祿), 송상봉(宋翔鳳)이 있다. 장존여는 공양학 연구의 개조이며, 그가 지은 『춘추정해(春秋正解)」는 공양춘추를 공부하는 학자들의 지침서가 되었다. 장존여는 이공(李塨)의 사상에도 관심을 가져 실용적인 학문을 중시했다.
유봉록은 장존여의 외손자이다. 그는 동중서(董仲舒)의 『춘추번로(春秋繁露)』와 하휴(何休)의 『공양해고(公羊解詁)』를 연구했고, 이들의 학설을 바탕으로 『춘추』에 나타난 공자의 미언대의(微言大義)를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봉록은 특히 하휴의 삼과구지설(三科九旨說)을 바탕으로 인류의 역사는 쇠란(衰亂)→승평(昇平)→태평(太平)의 단계로 진보한다는 것이 공자의 미언이며, 청나라의 역사적 현실을 이런 시각에서 파악했다. 유봉록의 학설은 청말 변법개혁가인 캉유웨이[康有爲]에게 수용되어 『신학경위고(新學經緯考)』란 저서로 나타났다.
송상봉은 장존여의 조카인 장술조에게 공양학을 배운 학자이다. 그는 『논어설의(論語說義)』에서 자공(子貢) 이하 64명이 공자의 미언을 좇아 공자를 소왕(素王)으로 모셨다고 서술했다. 유봉록이 말한 ‘미언대의’와 ‘삼과구지설’, 송상봉의 ‘공자소왕설’은 공양학의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
19세기에 활동한 위원(魏源)과 공자진(龔自珍)은 유봉록에게 공양학을 배우고 이를 정치개혁의 이론으로 삼은 인물이었다. 위원은 송학을 배우다가 경세학을 지향했고, 공양학의 ‘삼과구지설’을 보다 현실적인 변화사관으로 심화시켰다. 위원은 유교의 이상적 정치인 요(堯) 순(舜) 우(禹)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치(治)이고, 국가의 부강을 위해 서양 국가의 산업과 군사시설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위원은 『해국도지(海國圖志)』에서 국가의 부강을 위해 상리(商利)를 충실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영리를 인간의 욕망으로 파악했던 대진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정책적으로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공자진은 유봉록의 공양학과 장학성의 사학 이론을 수용한 학자였다. 그는 경학과 사학을 연구하는 목적이 미래를 예측하는 미언대의를 밝히는데 있다고 했고, 당대의 정치 사회를 개혁하는 방안으로 농종(農宗)이나 평균(平均) 같은 논의를 전개하고, 신강성(新疆省)의 개발과 방비를 주장했다.
19세기에 강남의 상주지역에서 발전한 경세학은 이후 영남지역으로 전래되어 캉유웨이, 량치차오[梁啓超]와 같은 근대 정치사상가가 등장했다(大谷敏夫(1997), 240~249).
2015년 10월 27일 화요일
우리 민족의 중심종족은 부여이다
<우리 민족의 중심종족은 부여이다>
:서강대 임지현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적 헛소리를 비판한다.
:서강대 임지현 교수의 오리엔탈리즘적 헛소리를 비판한다.
임지현 교수는 횡설수설한다.
"사실 고구려사를 놓고 한국사냐 중국사냐를 따지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이건 2천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 중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실체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요. 있었던 것은 그저 고구려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그 2천년 전에 존재했던 고구려에 (근대 동아시아의 경우) 20세기에서야 등장한 근대국민국가라는 개념을 그대로 투영시켜 버리는 것이 지금의 논쟁구도인데, 이건 시대착오입니다. 인식론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얘기이지요. 가장 비역사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논리를 역사학자들이 전개하고 있다는 코믹한 상황이랄까요."
이 말은 맞지만 동시에 근대국민국가의 날조된 민족개념을 그대로 또한 사용한다.
"고구려사가 한국사라 주장하는 이들은 고구려인이 한민족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민족이란 개념 자체가 생겨난 게 고작 100여 년 전이라는 겁니다. 한반도의 경우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건 20세기 초였거든요. 북한의 사학자들은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마음대로 의역을 해서 '민족'이라는 말을 뽑아내곤 하지만(웃음),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어는 근대의 산물입니다. 근대에야 생긴 개념을 고대사에 대입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즉 서구 근대국민국가의 날조된 민족개념을 기준으로 다시 고구려사가 한민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착종된 논리를 버젓이 학자가 자기 자신이 비판한 그 개념으로 민족개념을 다시 찾아와서는 고구려사를 한민족의 역사에서 없애버리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학자가 아니라 거의 정신병자다. 근대민족 개념으로 고구려사를 보지 말자면서 근대 민족 개념으로 다시 고구려사는 한국사가 아닌 것이다. 말이 되는가?
민족은 서구 근대인의 자 민족 국가의 필연성에 대한 논증일 때에는 일종의 날조된 사기이지만, 특정한 혈연적 문화적 전통을 지닌종족이 타종족과의 경쟁 갈등 전쟁 속에서는 실체적인 개념이다.서구 근대가 유로-기독교 제국 체제하에서 그리스-유대적 문화 속에 통합되었다가 허구적 민족 개념으로 근대국민국가를 만들었던 경험을 기준으로 민족을 바라보가 때문에 임지현 교수와 같은 헛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를 중심으로 5국분립시대, 그리고 삼국 분립, 그리고 "삼한 일통"의 이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었던 탓에 서구 근대의 민족개념을 기준으로 우리 역사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임지현 교수의 횡설수설은 한마디로 오리엔탈리즘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근대민족개념을 비판하면서 서구 근대 민족개념을 그대로 차용하였기에 나온 사고방식인 것이다.
일전에 민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연재글에서 민족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민족은 없다는 결로은 핵심적으로 혈연적으로 유전적으로 계통화된 종족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타 민족에 대립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민족이란 없다는 뜻이었지 민족 자체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민족주의는 민족 대립이 생길 때 특정한 문화적 종족적 일체성을 지닌 민족의 공동체가 타 민족의 침략과 적대에 대해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구 근대의 민족은 민족주의적인 것이다. 하지만 서구 근대의 민족은 날조된 신화다. 유로-기독교 제국의 봉건체제가 정신적으로 기독교주의, 정치적으로는 봉건체제제적 분립 상태였다. 그러나 일정한 시장과 세금의 관할권을 요구하는 절대왕조가 유로-기독교 체제를 붕괴시키면서 옛 이야기를 기반으로 민족의 신화를 만들어내고 봉건영주체제를 붕괴시키고 국민국가를 만들면서 민족을 가공적으로 창안해냈다. 그들이 혈연적 문화적 종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종족적 혈연적 문화적 독자성보다는 유로-기독교 제국체제의 문화적 통일성 속에 함몰되어 있었던 탓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야만족들이었던 탓에 자기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지 못화고 그리스-유대적 문화에 그 정신적 문화적 밑바탕까지 흡수당한 상태였기에 옛 이야기들조차 기독교적으로 윤색되어 있었다.
따라서 국민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특히 근대적 자본주의의 발흥기에 형성된 상호 이해관계의 갈들이 그들로 하여금 국민국가로 통합할 이유가 생겼다. 이것을 수행한 것이 왕조에 의한 국민국가적 통합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서구의 민족은 날조된 인공의 것에 불과하다. 그들은 종족 내부에서조차 수개의 국가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고대역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고대 조선과 더 너머 고대 환국=밝달=배달국은 처음부터 민족걔념이 없는 세계제국으로서 탄생하고 더군다나 적대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종족적문화적 통일성을 형성하고 있었다.하지만 고대 환국에서 은나라가 분기되어 나가고 은나라가 자기를 중심으로 주변을 적대하는 그 과정에서 조선은 세계제국의 일부가 아닌 국가가 된다. 처음으로 다른 국가를 대면한 것이다.그리고 은과의 갈등과 협력이 반복되다가 주나라가 형성되면서 본격적인 제국와 제국의 갈등으로 번지면서 조선의 가장 강대한 부여(불한 조선-그 뿌리는 기본적으로 유목적 수렵적 전통을 가진 고대 한민족이다)를 중심으로 BC700년 경에 조선은 새로 통합된다. 하지만 곧이어 춘추전국 시대의 말기에 한의 형성과정에서 점차 고조선은 삼한관경체제가 붕괴되고 대 열국 시대가 일어난다. 약 150여개 국가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부여를 중심으로 대통합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한나라의 영토를 북경 이서로 밀어붙이는 과정이었다. 고주몽의 당호 "다물"이라는 것은 고조선의 옛 영토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니 당연히 이때부터 민족 개념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서 대열국시대가 5국(부여, 고구려, 신라, 가야, 백제)시대로 통합되고 다시 삼국으로 정립되면서 고구려에 의한 천하가 AD5세기까지 진행되었으나 백제가 워낙에 강국이라서 삼한 통일은 하지 못하고 수당전쟁의 와중에 가장 곤혹스러웠던 백제, 고구려가 먼저 망했지만 결국은 발해-신라 남북국 시대로 넘어가고,잔존 백제와 가야세력이 일본으로 독립하여 간다. 백두산 대폭팔로 발해가 멸망하면서 거란- 고려의 남북국으로 다시 전환되고, 문화적 전통은 고려로 일통이 일어난 것이다. 거란의 멸망과 발해의 잔존 부족인 여진의 부흥으로 다시 여진- 고려 2국체제로 갔다가 원제국에 의해 동아시아 전체가 통일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려는 결국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한국의 역사는 형성된 것이니 중국의 문화에 통합된 선비-거란-여진과 같은 우리 민족의 일파는 중국 민족의 일부가 되고, 우리는 지난 5천년의 역사문화를 통합하고 이어온 민족이니 그 민족이 민족의 전통이 된 것은 단군조선의 문화요, 배달환국의 홍익인간의 정신이며, 부여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핵심 전통이고, 진한조선의 일파인 신라가 그 핵심전통을 또한 형성하였으니 불한 조선의 부여종족이 우리 민족의 중심이고, 진한 조선이 그 다음이다. 그러나 대개가 다 환웅단군을 섬기는 조선의 유민들의 역사다.
이런 측면에서 민족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역사가 아니라는 논리가 근대민족의 날조 개념을 그대로 가져온 서구 오리엔탈리즘의 결론이다.
2015년 1월 8일 목요일
중국연구 site
[연구기관 및 연구집단]
-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중국연구센터
http://www.brookings.edu/china.aspx
http://www.brookings.edu/china.aspx
- 호주국립대학(ANU)에서 운영하는 동아시아포럼
http://www.eastasiaforum.org
The China Story (호주 국립대학 중국연구진들이 운영하는 중국전문 사이트)
http://www.thechinastory.org/
http://www.eastasiaforum.org
The China Story (호주 국립대학 중국연구진들이 운영하는 중국전문 사이트)
http://www.thechinastory.org/
- 싱가폴 국립대학의 동아시아 연구소
http://www.eai.nus.edu.sg/
http://www.eai.nus.edu.sg/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중국연구자들이 운영하는 팀블로그 : 현재는 운영중단, 아카이브로 사용 가능
http://www.thechinabeat.org/
http://thechinabeat.blogspot.kr/
http://www.thechinabeat.org/
http://thechinabeat.blogspot.kr/
-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http://www.petersoninstitute.org/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중국 경제 전문 블로그 : China Economic Watch
http://blogs.piie.com/china
http://www.petersoninstitute.org/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중국 경제 전문 블로그 : China Economic Watch
http://blogs.piie.com/china
- 프랑스 현대중국연구센터
http://www.cefc.com.hk/
학술계간지 China perspectives 도 여기서 볼 수 있음
http://www.cefc.com.hk/china-perspectives/issues/
http://www.cefc.com.hk/
학술계간지 China perspectives 도 여기서 볼 수 있음
http://www.cefc.com.hk/china-perspectives/issues/
- 차이나 스터디 그룹 : 현재는 업데이트가 잘 안되지만 영미 및 유럽의 좌파중국연구자들이 참여했던 사이트, 매년 웹진 China Left Review를 발간했었음
http://chinastudygroup.net/
http://chinastudygroup.net/
- 하버드 옌칭연구소
http://www.harvard-yenching.org/
http://www.harvard-yenching.org/
- China File : Asia Society가 운영하는 중국 전문 웹진, 아주 유용함. 특히 NYRB의 중국 관련 서평 모음이 수십년 전 것부터 아카이빙되어 있음
http://www.chinafile.com/
http://www.chinafile.com/library/nyrb-china-archive
http://www.chinafile.com/
http://www.chinafile.com/library/nyrb-china-archive
- EU의 아시아 센터 홈페이지
http://www.centreasia.eu/?lang=en
http://www.centreasia.eu/?lang=en
-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관련 논문 및 논평들을 볼 수 있는 저널 사이트
http://japanfocus.org/
http://japanfocus.org/
- China Labour Bulletin (CLB)
http://www.clb.org.hk/en/
http://www.clb.org.hk/en/
- China Labor Watch (CLW)
http://chinalaborwatch.org/home.aspx
http://chinalaborwatch.org/home.aspx
- 工潮 (독일의 중국 노동운동 관련 사이트, 영어로도 대부분의 자료를 제공)
http://www.gongchao.org/
http://www.gongchao.org/
- 차이나 디지털타임즈 : 주제별 각종 영문뉴스 아카이브
http://chinadigitaltimes.net/
http://chinadigitaltimes.net/
- 존스홉킨스 대학 조반니 아리기 센터
http://krieger.jhu.edu/arrighi/
http://krieger.jhu.edu/arrighi/
-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중국연구소 (라이덴 대학 중국연구소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아주 유용함. 매일 5-6개의 중국관련 뉴스나 연구자료 등을 업데이트해줌)
http://www.hum.leidenuniv.nl/chinees/
http://www.hum.leidenuniv.nl/chinees/
[언론]
- 차이징 영문판
http://english.caijing.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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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타임즈의 중국 전문 블로그
http://sinosphere.blogs.nytimes.com/
http://sinosphere.blogs.nytimes.com/
-월스트리트 저널 China Real Time Report
http://blogs.wsj.com/chinarealtime/
http://blogs.wsj.com/chinarealtime/
- 가디언의 중국 페이지
http://www.theguardian.com/world/china
http://www.theguardian.com/world/china
[통계]
1. 중국국가통계국
http://www.stats.gov.cn/
http://www.stats.gov.cn/
3. 미시간 대학 중국통계센터
http://chinadatacenter.org/
http://chinadatacenter.org/
[연구자](개인 홈페이지를 운용하거나 학과 공식 페이지에 책 챕터나 논문 자료 등을 업데이트 하는 사람들 위주)
알렉산더 데이
http://alexanderday.net/
http://alexanderday.net/
[연구자료 모음]
중국과 자본주의 (덴마크 좌파 포탈 사이트의 중국 관련 논문 모음 페이지)
http://spip.modkraft.dk/…/unde…/article/china-and-capitalism
http://spip.modkraft.dk/…/unde…/article/china-and-capitalism
Five Books (관련 분야의 전문가에게 특정 분야의 책 5권을 선정하게 하고 그와 관련한 인터뷰를 다루는 재밌는 사이트) 의 중국 관련 모음
http://fivebooks.com/section/book/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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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의 블로그 (좌파 포탈 립컴에서 활동하는 중국연구그룹의 추천목록)http://libcom.org/blog/nao-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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